[허행윤칼럼] 재난기본소득, 코로나 위기 반전카드?… 지역경제 ‘마중물’ 전망도

정치가 국민 눈물 닦아주는 행위라면 총선 앞둔 정치권서도 논의 바람직

허행윤 기자 | 기사입력 2020/03/12 [16:50]

[허행윤칼럼] 재난기본소득, 코로나 위기 반전카드?… 지역경제 ‘마중물’ 전망도

정치가 국민 눈물 닦아주는 행위라면 총선 앞둔 정치권서도 논의 바람직

허행윤 기자 | 입력 : 2020/03/12 [16:50]

 

기본소득이란 경제용어가 있습니다. 정부가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리도록 조건 없이, 다시 말해 노동 없이 지급하는 소득을 일컫습니다. 재산의 많고 적음이나 근로 여부 등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들에게 생활을 충분히 보장해줄 수 있는 수준의 소득을 무조건적으로 지급하는 개념입니다. 토머스 모어의 유명한 소설 <유토피아>에서 처음 등장했습니다. 무릇 한 사회 가치의 총합은 구성원들이 함께 누려야 한다는 데서 시작된 셈입니다.

 

재원은 투기 소득에 대한 중과세,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 법인세 인상, 토지세, 다국적 기업 공조 과세 등입니다.

 

반론도 만만찮습니다.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소득 불균형, 내수 침체, 일자리 감소 등을 완화할 수 있지만 재원 마련 등의 현실 가능성이 떨어지고 되레 기존 복지 시스템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그것입니다.

 

재난기본소득이란 개념도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지구촌이 홍역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아이디어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최근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관련 추경으로 11조7천억 원 규모를 편성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산발적인 지원정책보다 한시적으로 국민 1명당 지원금 수십만 원을 일괄적으로 지급하자는 주장들이 각계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지구촌이 팬데믹(Pandemic)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뭔 생뚱맞은 경제용어 타령이냐고 타박하실 분들이 많이 계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요즘 기본소득, 특히 재난기본소득만큼 더 뜨거운 감자가 있을까요?

 

재난기본소득에 먼저 불을 지핀 건 김경수 경남지시입니다. 김 지사는 “모든 국민들에게 1인당 100만 원을 일시적으로 지원하자. 내수 시장을 과감하게 키울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며 재난기본소득 지급을 정부와 국회 등에 제안했습니다. 모두 51조 원이 필요하다고 추산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8일이었습니다.

 

이에 이재명 경기지사가 가세했습니다. 같은 날 자신의 SNS를 통해 제시된 이 지사의 워딩은 이렇습니다.“김경수 경남지사의 제안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우리 경제 규모와 복지지출 비중(OECD 절반 수준) 등을 감안하면 재원도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다. 일자리가 대량으로 사라지는 4차 혁명시대, 투자할 곳보다 투자할 돈이 넘쳐 저성장이 일상이 되는 시대에 경제 흐름을 되살리고 지속 성장을 담보할 유일한 정책이 재난기본소득이다.”

 

이 지사는 성남시장 재직 시 이미 청년기본소득으로 이 개념을 행정에 접목, 성공을 거둔 바 있습니다. 앞서 전주시는 이미 재난기본소득 도입에 들어갔습니다.

 

재난기본소득은 주민들의 직접 소비에 따라 지역경제가 원활하게 순환될 수 있도록 사용시한이 결정된 지역화폐 형태의 경제 시스템입니다. 쉽게 말하면, 현금 유통으로 지역경제의 선순환을 만들겠다는 발상입니다.  

 

재난기본소득에 대해 본격적으로 토론에 들어가기 전에 보수 야당의 반대를 위한 지적부터 먼저 소개하겠습니다. 그 까닭은 먼저 시행착오를 겪은 나라들의 사례를 점검하면 이 개념에 대한 객관성이 더욱 명쾌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재철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최근 원내대책회의를 통해 일부 여권 광역단체장들이 코로나19 위기극복 방안으로 재난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한 것에 대해 핀란드와 스위스 등이 실패했다며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핀란드와 스위스의 기본소득 실험은 정말 실패했을까요?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전문가들의 의견과 분석 등을 종합하면) “사실이 아니다”로 모아 집니다.

 

핀란드의 경우부터 따져 보겠습니다. 핀란드는 지난 2017년부터 2018년까지 기본소득 실험, 보다 정확하게는‘실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부분 기본소득’실험을 진행했습니다. 25세부터 58세까지 전국에서 임의로 선정한 실업자 2천명에게 매월 560유로(약 72만 원)를 2년 동안 지급하고 그 효과를 검증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지급된 금액에 대한 사용제한이나 보고의무 등도 없었습니다. 기본소득을 지급받다 취업하더라도 지급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실험 비교대상으로는 기존의 실업급여 대상자들로 설정했습니다. 기본소득과 취업률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제한적 실험이었던 셈입니다. 국내 대다수 언론들은 이 실험이 실패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이 실험의 설계·시행을 담당했던 당사자에 의해 반박됐습니다. 당시 핀란드 사회보장국의 올리 캉가스 국장은 지난 2018년 5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위와 같은 국내외 보도들에 대해 가짜 뉴스라고 단언했습니다. 계속 해당 실험이 진행 중인데다 실험 결과를 실망스럽다고 지적할 부분은 아직 없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기본소득 실험을 확대·연장해야 한다는 제안을 정부가 수용하지 않은 건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내린 정치적 결정 탓이란 취지였습니다.

 

스위스의 기본소득 국민투표 부결 사례도 기본소득 실험 실패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사실 기본소득제도를 실험조차 못한 사례인데다, 이를 ‘포퓰리즘에 대한 거부’로 알린 일부 언론 보도에 기반을 둔 평가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6년 6월 스위스의 기본소득 도입 헌법개정안 부결 소식을 전한 대다수 국내 언론들은 주로 “스위스 국민들이 매월 300만 원의 공짜 소득이 담긴 포퓰리즘 정책을 거부했다”는 취지로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습니다. 스위스 기본소득 운동단체들이 자신들의 홈페이지를 통해 성인 1명에게 월 2천500스위스 프랑(약 300만 원), 미성년자 1인에게 월 650스위스 프랑(약 78만 원)을 예시로 들긴 했지만, 정작 국민투표에 부쳐진 헌법개정안에는 구체적인 액수가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기본소득을 제공해야 한다”등의 내용을 헌법에 넣을 것인지 여부가 투표 대상이었습니다.

 

스위스 국민들이 기본소득 자체를 거부한 게 아니라, 재원조달 방안이 불투명한 기본소득 도입으로 인해 기존 복지제도 위축을 우려한 점이 부결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는 점도 감안돼야 합니다.

 

재난기본소득은 왜 이처럼 관심을 받게 됐을까요? 다른 재난과 달리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광범위한 피해’를 주는데도 기존의 방법으로는 피해자를 선별해 신속하게 지원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로 자영업, 돌봄, 제조 공장 등 대면 접촉하는 업종이 경제적 피해를 직접 입고 있지만 정부 지원은 업종별 지원보단 경제적 취약 계층에 집중됐습니다. 기존 복지 전달 체계가 있기 때문에 신속하게 지원할 수 있는 장점 때문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전염병이 지속되면 지원을 받은 취약 계층은 여전히 대면 접촉하는 업종에서의 소비를 주저합니다. 제조업에서 생산 차질도 여전하고, 세계적으로 총수요가 줄어들어 경기가 심각한 침체 국면에 들어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한정된 재원을 왜 불필요한 사람들에게도 주는가, 일시적 소득은 소비 성향이 낮다는 경제학자들 지적도 의미가 있습니다. 평시라면 세제 개혁과 재정 구조조정 등으로 지속 가능한 재정안을 설계해볼 수도 있지만, 재난 상황에선 그마저도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재난기본소득이란 아이디어는 다른 모든 대책을 대체하는 배타적인 방안으로 고려돼선 곤란합니다. 이번에 18세 이상 성인에게 1명당 160만 원 가량의 현금 지급을 발표한 홍콩 정부 역시 임대료 지원, 사업등록세 면제, 관광과 의료 분야 자금 지원 등의 정책을 함께 내놨습니다.

 

모름지기 모든 기본소득의 특성은 심사하지 않는 ‘무조건성’, 모두에게 지급하는 ‘보편성’, 일정 기간 지속 지급하는 ‘정기성’, 가구가 아닌 개인에게 지급하는 ‘개별성’, 현금으로 지급하는 ‘현금성’ 등입니다.

 

아동수당처럼 ‘보편성’에 어긋나도 특정 인구 집단에 심사 없이 지급하면 ‘범주형 기본소득’으로 분류하기도 하고, 지자체가 현금이 아닌 지역화폐로 지급해도 변형된 기본소득으로 보기도 하지만, 선별과 심사 과정을 없애거나 최소화하는 것은 기본소득의 필수 요건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이재명 경기지사 등이 제시하고 있는 재난 기본소득은 이 요건들 가운데 ‘정기성’을 충족시키지는 못하겠지만, 다른 요건들은 모두 갖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도 충분하게 토의하고 논의해야할 사안으로 손색이 없다는 게 저의 좁은 견해입니다. 코로나19로 고통을 겪고 있는 국민들을 위한 최선의 방안, 또는 정책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행위가 정치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허행윤 수원화성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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