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3일 지방선거 캠프에서 공보업무 파트를 담당하였습니다. 지방언론의 기자로 시작해서 편집국장과 시청 주재기자를 한 베터랑 선수와 함께하였으니 큰 걱정은 없었습니다. 매일매일 사무실에 나가서 그날의 일정을 체크하고 정리하는데 함께했습니다.
마치 1988년 공무원 7급, 30세 때의 자세로 일했다고 자부합니다. 여러 사무실을 오가면서 기사가 될 자료를 얻어오고 정보를 모으고 그렇게 해서 그날의 자료를 작성하여 언론에 매일로 보내는데 일조했습니다.
사진팀이 현장에서 보내오는 자료를 선별하여 언론전문가와 3~4장으로 압축하는 옥석을 가리는 결코 쉽지 않은 작업도 해냈습니다. ‘쉽지 않은 작업’이라는 이유는 이 사진들을 촬영하기 위해 사진작가가 보여준 열정과 노력을 알기에 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체계적이지 않은 선거캠프에서 일하다 보니 각 팀원으로서는 일을 잘하는데 부서 간 유기적인 협력체계가 鞏固(공고)한 행정기관을 따라가지는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미진한 부분을 채우는 방법은 한 발 더 뛰고 해당 부서를 찾아가고 필요하면 전화를 해서 소통을 증진해야 했습니다.
현직에서 공무원으로 일할 때의 기억도 났습니다. 공직에서 課長(과장)이 결정한 것은 타당한데 局長(국장)실에 가면 틈새가 보인다고 했습니다. 교통과장은 불법 주정차를 집중 단속하고자 하는데 기관장을 더 가까이 자주 만나는 교통국장은 조금 살살하자는 온건파가 되는 정치와 행정의 교차점이 있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선거지원 업무를 마치고 마무리로 방송 인터뷰를 준비했습니다. TV용 카메라 앞에서 녹화를 하는 작업이지만 대부분의 정치인, 공무원은 카메라 울렁증이 있지만 좋아합니다. 뉴스에서는 9초 정도 나갈 화면인데도 당사자는 5분 이상 말하고 싶어 합니다.
2003년에 경기도청 공보실에서 도지사 인터뷰를 지원했습니다. 도백이 하실 말씀을 큰 글씨로 워딩하여 가벼운 재질인 스티로폼에 분사형 본드로 가볍게 붙인 ‘컨닝페이퍼’를 카메라 렌즈앞에 올리는 일을 했습니다.
당시 5급 사무관 7년 차였습니다. 계장이 판을 들고 도지사님이 말씀을 하시면 살며시 판을 내리고 다음 판넬을 보여드립니다. 옆에 대기한 6급 고참 차석이 그 판을 소리 없이 받아듭니다. 원고를 적은 판은 7장입니다. 이 작업을 5번 반복해서 촬영한 일도 있습니다. 어깨가 아프고 오금이 저려옵니다.
그리고 지방선거 다음날인 2026년 6월4일 새벽이 되었고 또다시 TV인터뷰가 필요했습니다. 판넬과 함께 노트북 PPT를 만들었습니다. 큰 글씨를 3줄만 적어서 본드로 붙였습니다.
PPT도 종이판넬과 같은 방식으로 준비하였고 노트북 리모컨을 연결하고 소리 없이 화면을 바꿔서 자연스럽게 인터뷰를 이어가도록 했습니다. 실전에서는 오히려 취재를 온 기자에게 2번 질문, 3번 질문이라는 사인을 주면서 인터뷰 진행을 주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사실은 이번 일에 참여하면서 나이를 걱정하였습니다. 젊은이들과 소통이 될 것인지, 혹시 조직 전체에 불편을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杞憂(기우)였으면 합니다. 단 한명의 청년으로부터 ‘많이 배웠다’는 립서비스(!)를 받은 바가 있음을 자랑합니다.
지금 2003년 공직생활에서 활약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판넬을 노트북으로 진화시켜서 23년 후인 2026년 실전으로 재활용했다는 성과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꼰대’가 아니라 캠프의 一翼(일익)을 담당했다는 자부심을 주변의 동료 선배들에게 보고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날 새벽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참 잘했다는 평가를 들으면서 어깨를 으쓱했습니다. 그리고 “도지사님 모시고 판넬 80번 올리고 내렸더니 그 다음번 인사에서 서기관, 과장이 되었다”고 자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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