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신 음악칼럼] 천재 음악가 ‘쇼스타코비치’에 부쳐

김명신 | 기사입력 2025/01/23 [09:13]

[김명신 음악칼럼] 천재 음악가 ‘쇼스타코비치’에 부쳐

김명신 | 입력 : 2025/01/23 [09:13]

▲ 김명신 수원시음악협회 회장     ©수원화성신문

 

프랑스의 ‘나폴레옹(1769~1821)’은 극장 주인들에게 영웅들이 승리를 거둔 전투 장면에서 자신의 이미지가 투영되기를 바라며, “오페라 공연 내용을 역사 속 영웅이 등장하는 것으로 바꾸라.”라고 요구했다. 때마침 베토벤은 나폴레옹에게 바치려고 ‘영웅 교향곡’을 작곡했다. 그가 민주주의와 자유·평등·박애를 구현하리라고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나폴레옹은 특별히 이 곡을 좋아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은 뒤 베토벤은 실망하여 헌정을 철회했다.

 

나치 독일의 독재자 히틀러(1889~1945)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음악을 좋아했다. 그 이유는 바그너의 음악에 민족을 구원하는 영웅 이야기 등 독일인의 자긍심을 치켜세우는 내용이 담겨 있어서였다. 그리하여 히틀러는 독일인을 하나로 뭉치게 하고, 게르만 민족 우월성을 세뇌시킬 목적으로 바그너의 음악을 이용하였는데, 나치 집회가 시작할 때 ‘마이스터징거’ 서곡이 울려 퍼지게 하였고, ‘지크프리트 목가’를 나치 당가(黨歌)로 사용하기도 했다.

 

중국의 ‘마오쩌둥(1893~1976)’은 “예술은 인민을 사회주의로 몰고 가는 혁명적 수단”이라며 중국 전통 ‘경극’을 혁명 영웅 이미지로 강조하는 현대극으로 개조할 것을 지시했다.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代)도 우상화와 체제에 찬양할 목적으로 음악을 동원했다. 김일성은 “혁명적인 노래는 총칼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도 적의 심장을 뚫을 수 있다.”라고 했고, 김정일은 음악 정치를 ‘선군(先軍)정치’를 떠받치는 주요한 수단으로 여겼다. 김정은도 이런 기조를 이어받아 2012년 모란봉 악단을 만들었다.

 

이렇게 정치는 음악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서 독재자들이 음악을 순수예술이 아니라 지배적인 수단으로 이용했는데,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 Shostakovich, 1906~1975)’는 프로코피예프와 함께 제2차 대전 중에 소련 모국에서 음악과 정치 사이에서 딜레마를 갖고 활동한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이다. 그는 특유의 번득이는 신랄함과 풍자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작곡하였으며, 일반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곡으로는 ‘왈츠 2번’이 있다. 20세기에 태어난 음악가임에도 불구하고 서방과 전혀 다른 음악 환경을 가진 공산주의 국가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조성의 해체와 아방가르드가 대세였던 서유럽의 음악 사조와는 상당히 다른 음악 세계를 구축하였다.

 

그의 음악이 시대와 정치 상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은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이다. 이 곡은 제2차 대전 중 소련과 미국의 연대감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했고, 소련 국민들에게 자부심과 희망을 주어 전쟁의 사기를 크게 고양 시켰다. 또한 그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사건은 전 지식인 사회에 대한 당의 통제를 알리는 본보기로 정치적으로 활용되었는데, 쇼스타코비치가 소련의 대미 전쟁 외교에 결정적 도움이 되었으며, 스탈린 말기에 정치 선전을 위한 문화외교 사절의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는 정치의 변화에 따라 ‘형식주의자, 인민의 적’에서 ‘영웅적인 작곡가’라는 상반된 음악적 평판을 받게 되었다.

 

2011년 맨부커상을 받은 영국 작가 ‘줄리언 반스(Julian Barnes, 1946~)’는 실존 인물 쇼스타코비치를 주인공으로 생애를 재구성한 신작 소설 <시대의 소음>을 내놓았다. 작가는 이 책에서 쇼스타코비치를, “남은 용기를 모두 자기 음악에, 비겁함은 자신의 삶에 쏟았다.”라고 요약하였다. 즉,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타협을 하면서도 자신의 예술적 신념은 끝까지 놓지 않은 쇼스타코비치의 인생은 갈등과 번뇌 그 자체로 바라본 것이다.

 

쇼스타코비치는 소련의 국가정책을 적어도 겉으로는 반대하지 않고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고, 나아가 이를 외부에 선전하고 홍보하는 모습까지 보였기 때문에 체제의 요구에 순응한 예술가, 혹은 기회주의자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에는 그의 음악의 복잡성과 난해성이 그의 비판적 성향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으며, 그가 엄혹한 체제 아래서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보호하고 최소한의 창작 활동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 가면을 썼다는 새로운 평가를 받게 되었다. 줄리언 반스의 소설 또한 그러한 관점을 취하면서 자유와 속박, 영광과 치욕, 예술과 정치 사이에서 줄타기 하는 예술가의 내면을 소설적으로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실제로 쇼스타코비치는 혁명이라는 주제에 일관되게 관심을 쏟았고, 세 여자와 평범한 사랑을 했으며, 특별히 의견을 내세우는 일이 없는 비교적 조용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작가 반스는 쇼스타코비치를 일신의 영광이나 안전을 위해 체제와 타협한 기회주의자로서가 아니라, 치열한 내적 갈등 속에서 자신의 예술을 끝까지 추구한 인물로 그린다. 작가가 보기에 쇼스타코비치는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타협을 하면서도 자신의 예술적 신념은 포기하지 않는 지극히 어렵고도 험난한 길을 간 인물이었고, 그를 위해 화려한 성공과 갈채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인간적 갈등과 번민에 시달려야 한 것을 발견한 것이다.

 

우리는 심각한 도덕적 문제에 직면하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종종 생각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은 정의로운 길을 선택할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가족과 친구들이 있고 그들의 목숨이 위험에 처했을 때 누구나 이상을 따른다는 것은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필자는 음악가 쇼스타코비치가 정치적인 긴장감 속에서 심리적인 갈등으로 고민하고 고통을 겪어낸 인간성에 공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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