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군 칼럼] 정조대왕의 수원 가로수 숲길 이야기

자연에게 길을 묻다! 화산 최재군 나무의사가 들려주는 인문학 강좌 2

최재군 | 기사입력 2024/12/30 [08:54]

[최재군 칼럼] 정조대왕의 수원 가로수 숲길 이야기

자연에게 길을 묻다! 화산 최재군 나무의사가 들려주는 인문학 강좌 2

최재군 | 입력 : 2024/12/30 [08:54]

▲ 화산 최재군     ©수원화성신문

 

수원은 조선 후기 르네상스를 이끈 정조대왕의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중 하나는 의왕시 경계인 지지대 고개에서 시작하여 노송지대, 만석거, 장안문, 팔달문, 대황교, 융건릉으로 이어지는 가로수 숲길이다. 아쉽게도 현재는 노송지대 5km 정도만 남아 있으나 실제로는 15km에 이르는 장대한 가로수 숲길이다. 이 같은 사실은 당시의 기록과 일제 강점기 자료와 사진 등으로 확인해 볼 수 있다.

 

정조대왕은 아버지 사도세자 묘(영우원)를 조선시대 3대 명당으로 알려진 구 수원읍치의 화산으로 이장하여 현륭원(융륭)을 조성하고 그 지역에 거주하던 백성들을 현재의 수원화성으로 이주시켰다. 이후 수원화성을 중심으로 신도시를 건설하며 집집마다 나무를 심게 하고 도시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숲으로 조성해 갔다. 정약용 선생이 기록한 식목연표에 당시의 나무 심기 내용이 나온다. 1789년부터 수원화성 건설이 한창이던 1795년까지 7년 동안 수원, 광주 등 8개 읍에 총 1,200만 주 이상 식재하였다. 매년 171만 주 이상을 식재한 것이다. 현재의 나무 심기와 비교하여도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숫자라 할 수 있다.

 

▲ 19세기 화성전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수원화성신문

 

프랑스 국립 동양어학교 도서관에 소장 중인 한글본 정리의궤의 채색된 ‘화성전도’는 현대 도시의 이상향으로 꿈꾸는 숲 속 도시가 그려져 있다. 19세기 그려진 ‘화성전도’ 역시 성곽 안팎으로 장대한 가로수 숲길이 지지대 고개에서 융건릉까지 그려져 있다.

 

수원의 지지대 고개에서 융건릉까지 가로수 숲길 조성은 1789년 사도세자 묘 이장 이후부터 1804년까지 이어지며 완료된 것으로 추정된다. 정조대왕은 1790년 2월은 왕실 재산인 내탕금 천 냥을 내려 주고 나무 심는 비용으로 사용하게 했다. 정조대왕이 심혈을 기울여 조성하고 그에 둘째 아들 순조가 이어받아 총 15년 동안 조성하고 관리된 가로수 숲길이니 ‘왕의 가로수 숲길’이라 할 수 있다. 정조대왕은 1798년 1월에 왕의 가로수 숲길을 조성하고 유지관리에 고생한 백성들을 위해 세금을 감면해 주며 수고에 보답하였다.

 

과거 노송지대에는 지지대(遲遲臺)로 명명된 널찍한 둥그런 자리가 위치하였다. 지지대 고개 남쪽 약간 아래 지역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국왕의 일기로 알려진 ‘일성록’에는 지지대 명칭에 대한 정조의 어록이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를 사모하는 정조대왕의 애틋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글이다. 현재 이곳은 효행공원으로 조성되어 관리되고 있다.

 

‘매번 현륭원을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에 미륵현(지지대 고개)에 당도할 때면 고삐를 멈추고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오래도록 떠나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말에서 내려 서성이곤 하였다. 이번 행차에서 미륵현 위에 둥그런 자리가 만들어져 대(臺)와 같이 보이는 것을 지지대(遲遲臺)라고 명명하니, 이후 행행하는 노정에는 ‘미륵현’ 아래에다 ‘지지대’라는 세 글자를 첨가해 넣도록 본부와 정리소(整理所)로 하여금 잘 알게 하고, 경 또한 이 뜻을 잘 알라‘

- 일성록 정조 19년(1795년) 윤 2월 16일 -

 

정조대왕은 한양 배봉산 자락 흉지에 묻혀 있던 아버지 사도세자 묘를 현재의 자리로 천원(遷園)한 이후 13번 참배를 위해 수원을 찾아온다. 이때 의왕시의 사근행궁, 사근현(지지대 고개), 노송지대, 만석거를 지나 장안문으로 들어서는 노선을 주로 이용했다. 지지대는 아버지에 대한 정조대왕의 효심이 서려 있는 곳이다. 현재는 지지대 비석과 비각이 의왕시 경계인 지지대 고개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1938년 일제 강점기 일본인 도쿠미쓰 노부유끼(德光宣之)가 간행한 조선의 임수(朝鮮の 林藪)에는 정조대왕이 조성한 가로수 숲길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의 임수는 당시 전국의 220개 마을숲이 소개되어 있고 이중 수원의 가로수 숲길은 ‘화성도로’ 편에 설명되어 있다. 위치는 북로와 남로로 구분되며 북로는 수원화성의 장안문에서 한양 방향으로 정자동을 거쳐 노송지대로 이어지며 남로는 팔달문에서 대황교를 지나 융건릉이 있는 화산에 이르는 구간으로 실제 거리는 15km에 이른다. 구한말 일제 강점기만 해도 이 가로수 숲길은 그 원형이 비교적 잘 남아 있었다. 

 

▲ 화성도로 장안문 밖 경성도로, 출처 조선의 임수(역주)     ©수원화성신문

 

▲ 1937년경 장안문 밖 소나무림 출처 京畿地方の名勝史跡     ©수원화성신문

 

화성도로 북로의 가로수 숲길은 소나무가 주종이며 일부 버드나무와 하층의 수목으로 키 작은 털진달래 등이 자라고 있었다. 소나무 크기는 최대 흉고직경 100cm, 최다 흉고직경 40cm이며 500여 주에 이르며 최대 흉고직경 85cm, 최다 흉고직경 60cm의 수양버들이 40그루 정도가 자라고 있어 거대한 아름드리 소나무 숲을 연상할 수 있다. 팔달문에서 화산에 이르는 남로의 가로수 역시 소나무가 주종으로 237주, 오리나무 112주, 버드나무 80주, 수양버들 80주가 자라고 있었다. 나무의 크기는 북로와 유사하고 그 규모 역시 비슷하다. 가로수는 도로 폭 4m 정도에 12m 간격으로 식재되어 삼복더위가 한창인 여름에는 도로가 그늘로 덮여 오가는 백성들을 보듬어 주는 숲길이었다. 현재의 가로수 식재 간격은 8m인데 12m로 식재되어 관리된 것을 보면 나무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수원의 화성도로 ‘왕의 가로숲길’이 현재까지 이어졌다면 국가유산청의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어 보호받을 가치 있는 나무들이었다.

 

▲ 대왕교 주변 소나무림 가쿠슈인(学習院大学) 고사진(조선 후기 1906년)     ©수원화성신문

 

▲ 대왕교 주변 소나무림 남가주대 동아시아 도서관 소장(Corwin Taylor 사진첩)     ©수원화성신문

 

수원화성의 장안문은 북문으로 임금이 한양을 오가는 대로이며 팔달문은 융건릉이 있는 화산으로 행차하는 대로이다. 조선의 임수에는 ‘두 곳 모두 차량 통행을 할 수 있는 시설이 있다.’ 하여 당시 교통수단과 도로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왕의 가로수 숲길은 정조 이후 순조, 고종, 순종까지 역대 임금이 행차하는 숲길이었다. 정조대왕이 조성한 왕의 가로수 숲길은 한양도성의 도로와 수목 관리 규정과 동등하게 관리되었다. 가로수는 함부로 훼손하거나 베지 못하였고 철저하게 관리되어 150년 이상 유지되었고 노거수들은 아름드리나무로 성장하였다.

 

왕의 가로수 숲길은 단순한 가로수 숲길이 아니다. 이는 군사적 목적과 방풍림의 기능도 겸하고 있다. 우리나라 성곽은 적으로부터 은폐하기 위해 주변에 숲을 조성하는데 수원화성의 경우 성곽의 북로, 남로의 가로수 숲이 그 기능을 대신한 것이다. 읍성을 적으로부터 은폐하기 위해 조성한 마을숲에는 포항 장기읍성의 장기숲이 대표적이다. 17ha 이르는 장기숲은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로부터 성곽을 차폐하는 역할을 하며 숲의 하부에는 큰 가시가 있는 탱자나무를 심어 군사적 방어 기능을 강화하였다. 수원화성에는 탱자나무 1 섬을 파종한 기록이 나온다. 구체적으로 어디에 사용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성곽을 수호하는 데 사용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또한 거대한 가로수 숲은 북서쪽의 차가운 바람을 막아주는 기능도 하였다. 조선시대 해안가나 마을 입구에 숲을 조성하여 바람을 차단하게 하고 나아가 마을 밖의 사악한 기운이 마을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는 수구막이 숲이 있다. 이를 전통조경에서 비보림(裨補林) 또는 엽승림(厭勝林)이라 한다. 비보림은 부족한 기운이나 지세를 보완해 주는 숲이고 염승림은 외부의 불길한 경관을 차단하거나 강한 기운을 막아주며 좋은 기운이 외부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준다. 왕의 가로수 숲길은 이와 같이 다양한 역할을 부여한 경관과 실용성을 갖춘 숲길이다.

 

아쉽게도 왕의 가로수 숲길은 세파를 견뎌내지 못했다. 8.15 해방 이후 한국전쟁과 도시화로 인해 그 자취는 점점 작아지고 사라져 갔다. 이제 그 흔적은 경기도 자연유산 1호로 지정된 노송지대에서 찾을 수 있다. 노송지대 소나무는 2024년 7월에 경기도 자연유산 1호로 지정되었다. 문화재 관리체계가 문화재에서 국가유산으로 바뀌면서 과거 문화재로 관리되던 노송지대가 경기도 자연유산 1호로 변경되었다. 의왕시와 경계에 위치한 지지대(미륵현) 고개부터 구 1번 국도를 따라 식재된 5km 거리의 소나무 숲이 노송지대다. 현재는 600여 주의 소나무가 관리되고 있으나 이중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어 남아 있는 소나무는 34주로 아직도 그 위용을 보여주고 있다.

 

수원시를 상징하는 시목은 소나무고 시화는 진달래다. 정조대왕이 시작하여 15년간 조성한 수원의 가로수 숲길은 구한말까지 유지된다. 당시 왕의 가로수 숲길은 100년 넘은 수목들이 즐비하였고 팔달산의 소나무는 무려 130년이 넘은 노거수가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여 당대 조선팔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나무 숲으로 인정받았다. 아울러 사도세자와 정조대왕이 묻혀 있는 신의 정원 융건릉의 소나무는 150년이 넘었다. 이들 소나무가 현재까지 이어져 왔다면 모두가 200년 훌쩍 넘는 노거수로 국내 최고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 1985년 노송지대 ⓒ수원박물관     ©수원화성신문

 

▲ 현재의 노송지대     ©수원화성신문

 

수원의 산림에서 소나무는 찾아보기 어렵다.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 자연적 천이로 소나무 숲은 점점 활엽수에 잠식되며 사라지고 있다. 그나마 소나무를 볼 수 있는 곳이 화성행궁의 후원인 팔달산이다. 마치 정조대왕의 혼이 팔달산을 지키고 있는 듯하다. 팔달산에 숲은 소나무가 잘 자라고 있다. 팔달산을 제외한 소나무는 광교산 정상부의 일부, 숙지산 일부 정도만이 남아 있다. 수원의 산림에서 자연 상태 소나무는 팔달산을 제외하면 소멸 단계에 있다. 자연적 현상이나 팔달산의 소나무만이라도 잘 보존되었으면 한다. 아울러 정조대왕부터 조성한 ‘왕의 가로수 숲길’이 역사 속으로 잊히지 않고 현재로 계승되고 후손으로 전해져 수원의 또 다른 정조대왕의 수목 인문학이 이어지길 기원한다.

 

프로필

- 수원특례시 공원녹지사업소 수목원 과장

- 조경기술사

- 자연환경관리기술사

- 문화재수리기술자(조경)

- 문화재수리기술자(식물)

- 나무의사, 수목보호기술자

- 경기도시공사 기술자문위원

- 조달청 평가위원

- 왕의정원 수원화성(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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