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바티스트 륄리(Jean-Baptiste Lully, 이탈리아 피렌체, 1632~1687)는 프랑스 루이 14세의 궁정 음악가이자 역사상 기록된 최초의 지휘자였다. 전업 지휘자가 생기기 전인 그 당시에는 보통 작곡가가 손을 움직이며 연주자들의 음을 조율해 주었는데, '륄리'는 손이 아닌 지팡이와 같은 긴 막대기를 바닥에 쿵쿵 내리치며 박자를 맞추어 주었다. 이것이 최초의 전업 지휘자와 지휘봉이 탄생한 순간이며, 이 지휘봉 덕분에 오케스트라는 전보다 더 우수한 연주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1687년 1월8일 그가 <테 데움>을 너무나 열정적으로 지휘를 하는 도중에 금속 꼬챙이가 자기 발등을 찍게 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위생도 열악한 시대에 ‘발 일부를 절단해야 생명을 건진다’라는 의사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수술을 거부하다가 파상풍 감염으로 인한 상처에 괴사가 일어나서 결국 몇 달 후 합병증으로 고통스럽게 사망했다.
이 안타까운 사건을 계기로 지휘봉은 작고 굵은 나무 막대기 형태로 바뀌었으며, 지금은 더 간결하고 가느다란 모양으로 정착했다. 오늘날 사용되는 것과 유사한 지휘봉을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멘델스존이다.
지휘자는 오케스트라나 합창단 등에서 연주의 시작과 끝, 템포, 리듬을 통일할 뿐만 아니라, 다이나믹, 프레이징을 비롯한 음악적 표현에 필요한 모든 해석을 연주자에게 지시하여 작품을 재창조하는 음악가이다.
중세 시대에는 손으로 선율의 움직임을 지시하거나 르네상스 시대 박자만 세주는 지휘법의 시대를 거쳐 17, 18세기에는 통주저음을 맡는 쳄발로 주자나 오르가니스트, 뒤이어 콘서트마스터가 지휘자의 역할을 겸임했다. 이때까지는 2~30명 이내의 체임버 오케스트라 곡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에 악장 등이 몸을 흔들면서 호흡을 맞출 수가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이 변화되기 시작한 것은 베토벤 시기부터이다. 영웅 교향곡부터 악기편성이 커지면서 연주자들이 100명 단위가 넘어가게 되었고 대규모의 앙상블을 맞추기 위해서는 지휘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이것이 전문적인 지휘자의 시초가 된 것이다.
언젠가 필자에게 오케스트라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이 지휘자가 왜 필요한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오케스트라 연주회나 영상 등을 보면 지휘자는 그냥 팔로 박자만 열심히 세고 있고 연주자들은 하나같이 지휘자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각자 알아서 연주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지휘자가 연주 중에 필요하다기보다는 연습 중에 연주자들이 음악을 완성된 경지에 도달할 때까지 훈련 시키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오케스트라 연습에 있어서 음색, 박자, 음향 등이 지휘자마다 다양한 해석의 차이가 있으므로, 같은 곡을 동일한 관현악단이 연주하더라도 지휘자가 누구냐에 따라 음악의 해석은 확연하게 달라지는 것이다. 즉, 스포츠에서 코치나 감독과 같은 역할이다.
사실, 지휘자의 역할은 음악 연주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생활 곳곳에서도 보일 수 있겠다. 직장이나 사업장 그리고 가정에서도 CEO, 리더에 따라 기업경영을 잘할 수 있거나 못할 수도 있고, 단체나 개개인의 재능을 발휘하거나 못할 수도 있는 지휘자의 역할처럼 말이다.
[사족(蛇足)] 륄리는 연주 도중에 불의의 사고로 뜻하지 않은 죽음을 맞이했지만, 현재 여러 직업군 중에 지휘자들의 수명이 가장 길다는 통계가 있다. 앙드레 프레빈 98세, 아르투르 토스카니니 91세, 게오르그 솔티 86세, 세이지 오자와 90세에 사망, 현존하고 있는 지휘자로는 아쉬케나지 88세, 주빈 메타 89세, 바렘보임 90세 등이다. 그러한 결과는 미국 미네소타대 의대 데일 앤더슨 박사의 저서에서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건강과 장수에 관한 비밀'에서 한 생명보험사 조사를 인용하였다. 즉, “지휘자는 양팔을 많이 써서 전신운동이 되어 다른 직업군보다 38% 더 오래 산다.”라고 밝히고 있다. <저작권자 ⓒ 수원화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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