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공무원 8급으로 근무할 때 6급 차석은 하늘이고 7급 선배는 지존이었다. 일하다가 ‘나가자’하면 조건 없이 영문도 모른 채 따라나섰다. 그리고 늦은 시각에 사무실에 돌아와 잔업을 처리했다. 당시 유행어로 '술 잘 먹는 자가 일도 잘한다'라는 공직사회의 구호에도 충실했다. 정말로 술을 많이 마시면 일도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 줄 알고 과음하고 폭음하다가 나중에는 조지훈 선생의 주도 18단 중 4단계 은주(隱酒)에 이른 바도 있었다.
조지훈 선생은 주정도 교양이라면서 많이 안다고 해서 다 교양이 높은 것이 아니듯이 많이 마시고 많이 떠드는 것만으로 주격이 높아지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음주에서의 18단계를 설파했다. 그중 4단계에 은주가 있다. 공무원 6급과 어울리는 隱酒(은주)는 마실 줄 도 알고 겁내지도 않고 취할 줄도 알지만 돈이 아쉬워서 혼자 숨어서 마시는 것을 말한다.
공무원이든 직장인이든 일을 하다 보면 성과도 있고 스트레스도 있으니 근무시간 내내 일만 할 것이 아니라 더러는 술 한잔하면서 피로를 풀고 새로운 다짐을 하고 구성원이 화합 단결하는 기회를 마련할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술 잘 마시면 일도 잘한다는 논리를 억지로 개발하였을 것이다. 혹시 업무에만 열중한다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술 한잔하면서, 식사를 하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가운데 참 좋은 기획안이 떠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음주를 권하자는 말은 아니지만 과거 술 마시기 전에 후배들이 선배를 위해 챙겼던 숙취해소에 좋다는 음료가 빅 히트한 사례가 있다. 이 음료는 당시의 가격으로도 고가품이었는데 많이 팔려서 제약회사와 약국의 매출에 효자상품이 되었다. 이 음료를 개발한 사람은 바로 제약회사의 주당이었단다.
회사에서 술 마시고 지각하고 결근하는 문제성 사원을 무보직으로 별채 사무실에 배속시켰다고 한다. 역시 매일 술 마시고 숙취에 빠져 출근한 이들은 '우리가 그래도 제약회사 직원인데 숙취 해소제를 만들어보자'라고 마음을 모아서 경험적으로 만든 것이 바로 이 음료라고 한다.
혹시, 미원과 미풍의 경쟁에 대해 들으신 이야기가 있을까. 두 회사가 일본에서 조미료 원료를 받아와서 정제하여 미원과 미풍이라는 조미료를 경쟁적으로 시판했다. 치열한 경쟁을 진행하던 중에 어느 한편의 회사 사원의 분임조에서 단순하지만 의미 있는 아이디어를 냈다. 유리병에 조미료를 담아서 판매하는 제품의 뚜껑을 열면 그 안에 구멍이 뚫린 제2의 뚜껑이 나오는데 이 뚜껑의 구멍 크기를 지금보다 2배로 하자는 의견이었다.
주부들은 찌개를 끓여서 밥상에 올리기 전에 미원병의 뚜껑을 열고 3번 정도 흔들어서 조미료를 첨가했다. 그런데 이전까지 같은 크기의 2개 회사 조미료 병에서는 비슷한 양의 조미료가 찌개에 투하되었다. 그런데 구멍을 크게 만든 회사의 조미료 병에서 더 많은 양의 조미료가 찌개에 들어갔다. 당연히 조미료의 맛이 강하게 느껴졌다. 주부들은 전보다 2배 정도 조미료가 들어간 것은 생각하지 않고 다른 조미료보다 맛이 더 잘 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교육기관 근무할 때 영양사가 결근해서 대신하여 식단을 짜서 주방에 넘겼는데 그날의 메인인 잔치국수가 이전의 영양사의 식단보다 맛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나중에 출근한 영양사로부터 지적을 받았다. 영양사가 짜놓은 100인분 메뉴표를 참고하여 50명 급식메뉴 오더를 넘겼던 것이다. 식재료와 조미료가 2배 들어갔으니 전보다 잔치국수의 맛이 좋아진 것은 당연지사였다.
경기도청 국장, 과장들이 홍길동의 호부호형을 못한다는 말을 했었다. 새로운 업무가 주어지면 부서원들이 신명나게 뛰어다녔던 1980년대 공직이나 이 시대 IT 회사 직원들의 근무행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공직사회에서 실무자의 권한이 결재권자보다 높아지는 희귀한 상황이 연출된다는 말도 들었다. 그래서 제안한다. 산업화시대, 유신시대, 문민정부를 거치면서 공직사회가 많은 변화를 겪고 있지만 더 이상 공직사회의 보편화를 거부해야 한다. 공직이 공직다워야 한다. 그런 바탕의 소통방식을 제안한다.
최소한 술이 체질에 맞지 않아도 상사나 선배가 술 한잔 하자 하면 같이 식당에 가고 술잔을 권하면 받아서 앞에 놓고 집배라도 하는 지난날 선배들이 즐겼던 공직의 기강에 동참하기를 바란다. 더 이상 공직은 월급쟁이의 모임이 아니라 국가, 국민, 도민, 시민을 위해 내 젊은 평생을 바치는 '직업공무원'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바이다. 그런 신념의 바탕에서 공직내 소통을 펼쳐주기를 이 시대 젊은 공직자 모두에게 요청하는 바이다. <저작권자 ⓒ 수원화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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