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공직사회에서 갑질이라는 문제가 더 크게 부상하고 있는 듯합니다. 갑질로 인한 피해는 당장 필드에서 갑질로 어려움을 겪은 이들의 고통이 있었고 이를 지적하는 감사부서의 조사와 징계위원회의 논의, 그리고 당사자가 조직으로부터 징계조치를 받은 이후의 긴 시간을 징계의 굴레를 쓰고 감내해야 하는 과정으로 이어집니다.
갑질은 시대적으로 그 느낌이 다르다고 봅니다. 1980년대 공직사회라면 평범한 일상이었을 일이 오늘날에는 갑질이 되고 더러는 큰 잘못으로 확정이 됩니다. 과거 군대에서 밤 12시까지 몽둥이 구타를 당하지 않은 날은 더 불안해서 잠이 오지 않는다 했다지요.
사실 과거 도청의 공직사회 모든 사무실에는 한두 명 잔소리, 험담을 해대는 사무관 계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공무원들은 이들이 잔소리를 시작하면 ‘저 양반 또 시작이군’ 하면서 귀를 닫았습니다. 내용을 들어보면 그렇게 큰 잘못이 아닌데 게딱지 후벼 파듯이 소속 공무원의 업무행태를 비판하곤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즘의 시각으로 보면 엄청난 갑질을 한 그 당시의 간부들은 평온하게 승진하여 서기관에 이르고 더러 몇 명은 국장급 3급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업무에서 갑질을 하고 문서를 내던지는 '못 된 짓'은 오히려 열심히 업무를 챙긴다는 평가를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 업무행태가 조직을 이끄는 이른바 '카리스마'가 되기도 하였지만 이 시대에 비춰보면 그 당시의 하찮은 카리스마가 '칼있으마'가 되고 이들의 공직 생활을 힘들게 하는 부메랑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어느 상황을 말하면서 비교평가를 해도 이것이 갑질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으니 모두가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공직은 어려운 일을 이겨내고 극복하면서 목표하는 바를 이룩해 나가는 과정이니 퇴직 공무원으로서는 이처럼 연약한 조직에서 무슨 큰일을 해낼까 우려하게 됩니다. 과거의 공무원은 간부들이 '공격 앞으로!!!'라고 소리치면 볼펜을 창으로 삼고 결재판을 방패 삼아 앞으로 내달렸습니다. 지시사항의 정의감보다는 상자의 지휘력이 앞섰던 1955~1962년생들의 '졸개 생활'은 사복을 입은 군대 같은 조직이었습니다.
그리고 관선 도지사님의 예산편성을 위한 결재를 받고 돌아온 예산과장과 계장이 예산액이 부족하게 되자 10억짜리로 편성된 시군별 내역을 재검토하면서 결재 당시를 회고하여 도지사의 결재 시 숨소리를 기억하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결국 두 분 간부는 조금 전 결재를 받으면서 A시에 10억원은 “좋아”라고 답했고 B시의 10억원에 대한 답변은 조금 목소리가 작았다면서 2억원을 삭감하여 8억원을 지원하는 것으로 조정을 해서 다시 도지사실로 달려가 결재를 받아왔습니다.
전장에서 상사의 지휘는 때로 선악의 경계선을 넘나들 수도 있습니다. 장군은 병사의 생명을 걸고 명령합니다. 명령을 받은 야전사령관과 병사들은 포탄 속으로 내달립니다. 행정공무원에게 군대 같은 전투력을 요구하는 바는 아니지만 업무의 성공이나 조직의 힘을 발휘하기 위해 목숨을 걸지는 않아도 자신의 명예와 자존심을 내려놓고 명령에 따르던 1980년대 공직사회의 선배들 모습이 그립습니다. <저작권자 ⓒ 수원화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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