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문종 칼럼] 한류와 광주

유문종 | 기사입력 2023/05/18 [09:10]

[유문종 칼럼] 한류와 광주

유문종 | 입력 : 2023/05/18 [09:10]

▲ 유문종 경기대학교 겸임교수     ©수원화성신문

 

K-팝, K-음식, K-영화 등 K를 앞세운 다양한 분야의 흐름이 전 세계인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제공하는 나라로의 변화는 이미 오래된 역사가 되었다. 개인소득 1천 달러, 100억 달러 수출이라는 60~70년대 당시에는 원대한 목표가 지금은 먼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다. 연간 수출액이 6천억 달러를 넘어섰고, 1인당 개인소득도 3만 달러를 넘어 4만 달러 시대로 가고 있다. 물론 과거에 사용하던 지표가 변경되고 개인소득에 대한 개념의 변화가 있지만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팝의 원조라고 하는 미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를 누비는 K-팝의 힘은 어디서 왔을까? 세계인이 갈망하는 국제 영화제에서의 수상을 이어가는 K-영화는 어떻게 꿈을 현실로 실현했을까? 대한민국 시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았을 것이고, 많은 사람이 여러 의견을 내놓았다. 역사적 맥락에서 분석하기도 하고, 세대의 변화로 설명하기도 한다. 꿈을 현실로 바꾼 탁월한 능력자들에 주목하여 그들의 역량에 주목하는 사람도 있다.

 

한류에 대한 수많은 분석과 논평이 나왔지만, 필자는 자유분방한 사회 환경이야말로 한류를 가능케 한 가장 기초적인 토대하고 생각한다. 음악이든 영화든 무한한 상상력과 대중과의 소통이 작업의 출발이자 결과이기 때문이다. 상상력은 개인이 느끼지 못하는 무의식 속에서도 제약당한다. 명시적으로 금지하지 않아도 문화예술인들이 불편함을 느끼는 순간부터 상상력을 구속된다. 작은 심리적 부담만으로도 창조 행위는 막힌다.

 

그렇다면 구속과 규제가 없는 자유로운 문화예술 환경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60~80년대와 다른 현재를 낳은 동인을 찾아 설명해야만 한류의 성공 배경을 밝힐 수 있다. 통행금지의 시대, 장발을 단속하는 통제 사회, 치마의 길이를 신경 써야 하는 억압적 분위기에서 지금은 수많은 24시간 편의점이 전국 곳곳에서 밤을 밝히고, 머리 스타일이든 어떤 의상이든 개개인 판단에 맡겨져 있다.

 

필자는 한류를 생각하면서 광주를 떠올렸다. 통제와 권위의 시대를 역사로 보내고 자율과 창의의 시대를 가능케 한 역사적 사건으로 1980년 5월의 광주를 생각했다. 직선제 개헌이 실행되어 정기적인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가 가능하게 된 시기는 87년 6월 민주화운동 이후이고, 또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최초의 정권교체는 1997년에 이루어졌음을 생각해보면 80년 광주의 5월은 성급할 수 있는 상상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로운 선거와 정기적인 권력의 교체는 87년 6월 민주화운동의 결과였으며, 87년 6월 민주화운동은 80년 5월 광주시민들의 용기와 희생에서 시작되었음을 기억한다면, 현재 우리가 누리는 자율과 창의의 뿌리를 80년 5월의 광주에서 찾는 작업은 지극히 합리적인 접근이다.

 

80년 5월 이후 민주화를 위한 모든 활동은 광주를 무력으로 진압한 전두환 군사정권에 대한 싸움으로 시작되었으며, 광주시민들의 용기와 희생 덕분에 이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 이후 다시 부활한 군사독재에 항거하는 민주화운동은 80년 5월 광주에서 시작되어 87년 6월에 일단락이 지어졌다.

 

오늘날 세계인들이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류의 토대가 자유분방한 자율과 창의의 정신이라면, 그것을 가능케 한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되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97년 정권교체, 87년 6월 민주화운동의 출발이 80년 5월 광주임을 기억한다면 한류와 광주는 역사적 필연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80년 5월 광주에서 희생된 영령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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