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문종 (수원2049시민연구소 소장) ©수원화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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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결정과 집행과정을 보면서 점이지대, 혹은 기수역이라는 단어를 생각한다. 서로 다른 지리적 특성을 가진 두 지역 사이에서 중간적인 현상이 나타나는 공간을 점이지대라고 한다.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면서 민물과 바닷물이 서로 섞이는 구역을 기수역이라고 부른다. 이 곳은 바다생물과 민물생물이 공존하는 지역이라 어족자원이 풍부하다. 같은 물고기라도 기수역에서 잡히는 고기는 더 맛있다고 알려져 있다. 정책을 기획하고 집행할 때도 중간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잘 살펴야 한다.
현장중심, 핀셋정책을 이야기하지만 국가 차원의 기준은 경직될 수밖에 없다. 이번 코로나19 지원과정에서도 대상을 선정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문서로는 정확한 기준을 한 두 줄로 정할 수 있지만 현장에서 그 기준이 적용될 때는 복잡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를 20%나 30% 등 몇 가지 수치로 결정하기는 쉬울 수 있어도, 그 수치를 현실에 적용할 때는 많은 시간과 인력이 필요하다. 전년도 소득액을 산정하고, 현재의 소득액과 비표하면 간단할 듯하지만, 현장에서 업무를 추진하는 담당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소득파악이 그리 쉽지 않다고 한다.
지원대상을 선정할 때 더 큰 문제는 국가가 어느 특정 지역이나 상황을 고려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전체를 일반화하는 과정에서는 현장의 특수성이 사라진다. 문서는 각 지역과 현장의 상황을 정리하지 못하고, 일반적인 모습만을 보여줄 뿐이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현장이 아니라 몇 단계를 거치면서 정제된 수치만을 보여 줄 것이다. 유능한 행정가라면 그 수치가 담고 있는 현장의 모습을 어느 정도 복원하여 볼 수는 있겠지만 한계가 있을 것이다. 특히 중간지대, 점이지대라고 하는 구간에서는 이런 한계가 큰 차이를 보일 것이다.
점이지대 생태계만큼이나 사람 사는 사회도 복잡하고, 여러 일들이 뒤 섞여있다. 무 자르듯 명확한 기준은 문서에서나 존재하고, 삶의 현장은 모호함과 중첩이 항상 존재한다. 그 속에서 특정한 기준에 맞추어 사람을 선정하는 일은 참으로 힘든 작업이다. 선정된 시민은 다행이겠지만, 선정에서 탈락한 시민의 억울함은 계속 쌓여갈 수 있다. 이런 억울함을 줄이자고 현장 행정, 핀센지원을 외치지만, 현장으로 권한을 이양하지 않으면 별다른 성과를 내기 어렵다. 좀더 현장에 가깝게 권한과 책임을 이양하고, 예산과 인력도 배치하자. 어느 때보다도 분권의 힘이 절실하게 요청되는 시기이다.
국가보다는 시민의 삶에 더 가까이에 있는 지자체라면 그 현장을 더 명확하게 볼 수 있다. 지자체보다 더욱 현장에 밀착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읍면동과 통반장은 그 현장을 더욱 생생하게 알고, 느낄 수 있다. 주민과의 친소관계가 판단을 어지럽게 할 수도 있지만, 여러 주민과 토론하고 투명하게 판단과정을 진행한다면 최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정보를 공개하고, 지원대상을 여러 이웃과 의견을 나누며 판단할 수 있다면 당연히 최상의 성과를 얻게 될 것이다.
국가와 지자체, 읍면동의 권한과 역할을 생각하면서 이번 코로나19 대응과정을 복기해 보자. 작년 3월 마스크 혼란이나, 몇 차례 진행된 지원대상 선정과정을 위에서 이야기한 흐름을 타고 검토해보면 다시금 분권의 필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정부는 지원 방향과 목표를 제시하고, 큰 틀만 제공하면 된다. 현장에서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기준만을 제시하고, 현장에서의 적용은 지자체에서 판단하게 하면 된다. 지자체도 수 십 개 마을의 상황을 검토하면서 기준과 원칙을 정하고 나머지 최종 결정 권한은 읍면동에 맡겨도 된다, 아니 그럴 때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유문종 (수원2049시민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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