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란의 커피 이야기] 한국에 커피가 언제 들어 왔을까?

박병란 | 기사입력 2020/02/13 [17:00]

[박병란의 커피 이야기] 한국에 커피가 언제 들어 왔을까?

박병란 | 입력 : 2020/02/13 [17:00]

 

우리나라 사람들이 커피를 언제부터 마셨는지 중요하지는 않지만 사실 궁금하기는 하다. 우리나라의 커피 도입은 19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커피가 조선에 도입돼 17~18세기에 커피가 유럽이나 미국에서 인기 있는 기호식품으로 자리를 잡은 것을 보면 우리는 한참 늦은 시기이다. 고종이 제일 먼저 커피를 마셨다는 말은 사실일까 아닐까? 지난해 서울시가 주최한 <문화역 서울 284> 커피의 역사 전시회에서도 고종이 제일 먼저 커피를 마셨다고 안내자가 소개했다. 심지어 항간에는 아관파천 후에 손탁에 의해 커피가 고종에게 소개됐다는 이야기도 만들어지고 있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자 그럼 역사 속에서 진실을 찾아보자. 퍼시벌 로웰이라는 미국 천문학자가 있다. 극동에 있는 두 나라 조선과 일본을 세계에 알린 사람이다. 조선과 일본 여행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 천문대를 만들었고 그의 제자들이 로웰의 사후 명왕성을 발견하고 퍼시벌 로웰의 두문자 P와 L로 시작하는 이름을 플루토(Pluto)라고 명명했다. 로웰은 1883년 조선이 미국과 수교를 맺고 미국을 방문하는 조선 보빙사 일행의 가이드로 동행한 미국인이다.

 

고종은 보빙사의 일원인 홍영식의 보고를 받고 퍼시벌 로웰을 초청해 국빈으로 대접한다. 로웰은 한국에 1883년 12월에 들어와 3개월 정도 체류하다 1884년 2월에 일본으로 돌아간다. 이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저술한 책이 <Choso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a Sketch of Korea>이다. 이 책 18장에 경기도 지방 수장의 초청으로 연회에 참석했고 한강변 누각에 올라 당시 유행품이던 커피를 대접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이를 그 당시 자료를 추적해 보면 당시 경기도 관찰사는 통리기무아문의 참판, 군대의 고위 책임자와 그 외에 여러 직책을 겸직하고 있었던 바로 김홍집이다. 김홍집은 홍영식과 친분이 두터웠고 당시 경기도 관찰사는 왕이 신임하는 사람을 임명한다. 왜냐하면 한성 4대문을 벗어나면 모두 경기도 땅이었고 한성을 외곽에서 지키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시에 경기도 관찰사는 돈화문(서대문)을 막 벗어나면 지금의 대한적십자사 자리가 바로 경기도 관찰사가 있던 자리이다.

 

책을 좀 더 보면 경기도 관찰사가 직을 부여 받아 관리하는 한강에 있는 누각에 올라 조선의 최고 유행품인 커피를 마셨다고 썼다. 그 누각은 읍청루이다. 지금은 터만 남고 일제 강점기에 허물어 버렸다. 당시 마포지역에는 군대의 보급을 담당하는 별영창이 있었는데 그 별영창에 딸린 누각이 읍청루이다. 제18장의 제목을 The Sleeping Waves로 한 것으로 보아 읍(挹)은 물위에 뜰 읍(挹)자고 청(淸)은 고요할 청(淸)자이니 바로 읍청루를 가리키는 말이다. 또 책에는 당시 조선의 최고 유행품인 커피를 마셨다는 글을 써 놓았다. 여기서 유추해 보면 당시 양반 귀족인 대감들이 유행품이라 해서 외국에서 들여와 몰래 마시던 것이 바로 당시에는 가배(咖啡)라고 불리었던 커피였다. 김홍집, 홍영식, 김옥균, 박영효, 윤치호 등과 같이 개화파 지식인들이 모여서 이야기 나누며 마시던 차가 바로 커피였다. 이는 1896년 아관파천보다도 12년이나 앞서는 기록이다.

 

또 다른 기록을 보면 1883년 수출입 일람표에 커피를 수입했고 1898년 8월8일 의정부 찬정도지부대신 민영기는 무안 감리서로 보낼 물품 지원비로 일본 상인에게서 구입할 가배차 종구대(種具臺) 24개 18원 80전, 가배차 관(罐) 2개 70원 등을 청구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런 기록으로 보아 1876년 문호가 개방되고 커피는 자연스럽게 조선으로 흘러 들어왔다고 추론할 수가 있다.

 

윤치호라는 사람이 있는데 1883년부터 일기를 임종 전까지 써 왔다. 이 일기는 당시의 시대상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1883년 윤치호는 미국과 수호 조약 후 미국 초대 공사관 푸트의 통역사로 미국 공관에서 일했다. 윤치호는 1884년 5월8일 자 본인 일기에서 민비는 궁중에서 처음으로 양식을 차려 공관 부인들을 초청해 대접했다고 기록하면서 아주 잘 차린 음식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잘 차린 서양식이라면 우리는 보통 프랑스 정식을 지칭한다. 프랑스 정식의 마지막에는 커피와 디저트 등이 제공된다. 또 윤치호는 1885년 6월6일 중국 상하이에서 커피를 구입했다는 기록을 남긴다.

 

1883년 11월 전후해 윌리엄 칼스가 그의 저서 <Life in Corea>에서 조선 체류 중에 한 독일인의 집에서 커피를 마셨다는 기록을 남긴다. 그 독일인은 청나라에서 파견한 묄렌도르프를 지칭하는 것이다. 묄렌도르프는 독일인인데 청나라에 귀화해 조선에 고문으로 파견됐다. 그 집에서는 항시 커피를 음용하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1884년 3월8일 G. Woods는 본인의 의무일지에 기록하기를 미국공관에서 거처를 하고 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커피 한잔을 마시고 운동을 다녀왔다고 기록했다. 이런 기록으로 보아 외국 공관에서는 커피를 자유롭게 마시고 있었다는 증거이며 손님이 오면 커피를 대접했다. 로웰의 기록에도 자기가 거처하는 방으로 방문객이 오면 외국에서 가져온 것을 대접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외국 공관이나 외국인 집에서는 항상 커피를 음용하고 있었다는 것이 확실하다.

 

자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언제 커피가 들어왔을까?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에 들어왔다고 추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강화도 조약 이후 조선에 입국한 일본사람이 급격히 증가하고 일본 사람들이 만든 서양식 음식점이 곳곳에서 문을 열었다. 강화도 조약 이후 1차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김기수의 <일동기유>에서 보면 일본에서 대접받은 음식이 모두 서양식이었다는 기록도 보인다. 1884년 10월17일 갑신정변 당시 우정국 개국 축하 만찬회는 서양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로쿠료사(Rokugyosha) 주인인 일본인 수기(Sugi)가 담당했다. 추측컨대 당시 서울에 일본인이 경영하는 서양 음식점이 있었으며 출장 연회도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1876년 개항과 더불어 서양요리와 더불어 커피도 조선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음 주제는 커피에서 향기가 날까 안 날까 이다.

 

 박병란(커피 컨설턴트, 비엔나커피하우스 무실점 대표·단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커피학과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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