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행윤칼럼] 겨울만 되면 주먹 두 개 갑북갑북…정치, 그렇게 해주는 것

국민의 눈물 닦아주지 못할지언정 피눈물 하게 하지는 말아야…
그 겨울 따뜻했던 연탄불을 아십니까? 그곳이 따뜻함의 발아시점

허행윤기자 | 기사입력 2019/12/03 [10:55]

[허행윤칼럼] 겨울만 되면 주먹 두 개 갑북갑북…정치, 그렇게 해주는 것

국민의 눈물 닦아주지 못할지언정 피눈물 하게 하지는 말아야…
그 겨울 따뜻했던 연탄불을 아십니까? 그곳이 따뜻함의 발아시점

허행윤기자 | 입력 : 2019/12/03 [10:55]

 


오늘은 겸손하게 존댓말로 구어체(口語體) 형식의 글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겨울이고, 연말이니까요. 꼭 그렇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거리에서도 예전처럼 크리스마스 캐럴이 자유롭게 흘러나온다고 합니다. 얼마 전 당국이 저작권 부담 없이도 크리스마스 캐럴을 마음껏 틀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그 놈의 저작권….

 

사실 어렸을 적에는 요맘때면 전파사들마다 앞 다퉈 크리스마스 캐럴을 틀었거든요. 그땐 저작권이라는 개념도 없었을 때니까요. 암튼, 올 성탄절에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마음껏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겨울 얘기가 나오면 빠질 수 없는 녀석이 있습니다. 바로 연탄이라는 녀석이죠. 안도현 시인의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는 작품의 주인공인 바로 그 녀석이죠.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절, 연탄은 참으로 고마운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각오가 필요한 물건이기도 했지요. 가스 중독 때문입니다. 겨울이면 하루가 멀다 하고 연탄가스에 중독돼 목숨을 잃거나 크게 다치는 이웃들의 소식이 쏟아졌으니까요. 오죽하면 ‘검은 사신’이라는 말이 붙었을까요. 연탄은 그래서 애증의 역사를 갖춘 녀석이지요.

 

아주 더 어렸을 적에 고향 초등학교 도서실 서가(書架) 구석에 꽂혀 있던 동시집을 꺼내 읽다, 그 놀라운 감동에 화들짝 놀랐던 적이 있답니다. 윤동주 시인의 <호주머니>라는 작품이었죠. 그 동시는 이렇게 끝났답니다. “넣을 것 없어 걱정이던 호주머니는 겨울만 되면 주먹 두 개 갑북갑북”

 

시인이 일제강점기인 1936년 12월부터 1937년 1월 사이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동시라고 합니다. 주인공은 호주머니인데, 호주머니가 걱정하고 있답니다. 채울 게 없으니까요. 돈 없는 사람들이 주머니에 뭘 넣을 수 있겠습니까. 어린 아이가 호주머니에 뭘 넣을 수 있겠습니까. 다만 가장 추운 겨울에 오히려 뭔가 채워지는 겁니다. 그게 글쎄 주먹 두 개랍니다.

 

‘갑북’이라는 표현은 ‘가뜩’이라는 의미의 평안도 방언이라고 하더군요. 먹을 게, 입을 게 모자랐던 시대였습니다. 게다가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그런데 소년은 주먹 두 개만 넣어도 자신감이 있었나 봅니다. 갑북갑북이라 했으니 주먹 두 개로도 자긍심이 가득가득한 상태입니다. 넉넉하지 않은 일상을 주먹 두 개로 견뎌내는 자신감으로 시인은 독자를 위로해줍니다.

 

염려도 절망도 “주먹 두 개 갑북갑북”이라는 해학으로 녹여버립니다. 겨울철이면 주머니 두 개로 갑북갑북거린다는 그의 명랑성 덕분에 남루했던 빈곤이 오히려 수군대는 듯이 보입니다. 소유가 아니라 존재로 살아보겠다는 당찬 다짐도 느껴집니다. 넣을 게 없으면 두 주먹이라도 넣는다는 자세, 오늘의 현실에도 우리에게 위로가 됩니다. 따뜻하고 포근하게 말입니다.

 

요즘 서울 한복판 한 보험회사 빌딩 외벽에 “넣을 것 없어 걱정이던 호주머니는 겨울만 되면 주먹 두 개 갑북갑북”이라는 윤동주 시인의 글판이 붙어 화제라고 합니다. 회사 측은 지난 2011년 겨울편 이후 8년 만에 시민 공모 문안이 선정됐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긴 윤동주 시인의 작품에는 시대를 뛰어넘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의 바탕은 ‘어려움 속에서도 주먹을 쥐고 씩씩하게 살아가자’는 울림입니다. 글판은 내년 2월 말까지 걸려 있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때쯤이면 얼마나 무서울지 모르는 동장군(冬將軍)이 철수할 준비를 하고 있겠죠?

 

날씨가 제법 매워졌습니다. 그래서 상투적인 말투지만, 바깥에 나갈 땐 꼭 옷깃을 여미라는 당부를 드립니다. 윤동주 시인의 글귀처럼 시민들도 비가 온 뒤 쌀쌀해진 날씨에 호주머니 깊숙이 두 손을 넣고 다니는 게 요즘의 거리 풍경입니다. 어떤 여자 아이는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할아버지 외투에 손을 넣고 걷기도 합니다.

 

정치도 그랬으면 합니다. 누가 그러지 않았습니까? 정치는 무릇 국민의 눈물을 닦아 주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지는 못할지언정, 피눈물이 나게 한다면 그건 엄청난 분노를 유발하는 시점입니다. 정치는 그래서 따뜻해야 합니다. 우리를 따뜻하게 덥혀줬던 연탄처럼, 넣을 것 없어 걱정이던 호주머니가 겨울만 되면 주먹 두 개로 갑북갑북했던 그 겨울처럼 말입니다.


[허행윤 수원화성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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