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을 평가할 때 중국 후한시대 조조(曹操)만큼 극과 극으로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은 없다. 그는 서진(西晋)시대 역사가 진수(陳壽)가 쓴 <三國志> 등 정사(正史)를 통해선 위(魏)나라 건국의 기초를 닦은 인물로 기록됐다. 후한의 마지막 황제였던 헌제(獻帝)로부터 황위를 양위 받아 등극(
登極)하기도 했다. 당시로선 혁신적인 경제정책인 둔전제(屯田制)를 시행하기도 했다.
이와는 다른 결도 있다. 명나라 때 나관중(羅貫中)이 쓴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선 끊임없이 권력을 탐하는 비열한(卑劣漢), 또는 배신의 아이콘으로 묘사됐다. (물론 픽션이긴 하지만) 사뭇 대조적이다. 오죽하면 “내가 세상을 버리게 될지라도 세상 사람들이 나를 버리지는 않게 하겠다”는 말이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겠는가. 물론 실제로는 어떤 인물이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길은 없다.
이처럼 배신의 아이콘이기도 했던 조조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신의와 예의를 갖추고 아까워했던 인물이 있었다. 당대 최고의 장수인 여포(呂布)의 책사 진궁(陳宮)이었다. 물론 <삼국지연의>를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였지만 말이다. 암튼, 정사나 야사에도 조조는 진궁을 자신의 참모로 옆에 두고 싶어 했던 점은 팩트였던 것으로 보인다.
조조는 자신을 공격한 여포를 참수한 뒤 그의 책사였던 진궁을 심문하면서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조조가 진궁에게 “평소 늘 스스로 지모를 갖춰 남음이 있다고 자부했는데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진궁은 “그가 내 말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여기서 그는 여포를 가리킨다) 이에 조조는 “오늘 일은 뭐라 진술하겠느냐”고 물었고, 진궁은 “신하가 돼 충성하지 않고 자식이 돼 효도하지 않았으니 죽는 게 운명”이라고 응수했다. 조조가 다시“그렇다면 노모는 어찌하겠느냐”고 심문했고, 진궁은 “효로써 천하를 다스리려는 자는 남의 부모를 해치지 않는다고 했으니, 노모의 생사는 명공에게 달려 있다”고 대답했다.
조조가 다시 아내에 대해 묻자 진궁은 “장차 천하에 인정을 베풀려는 자는 남의 제사를 끊지 않는다. 아내의 생사도 명공에게 달려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조조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끝내 진궁 앞에서 눈물을 훔쳤다. 조조는 진궁의 어머니가 별세할 때까지 봉양하고 아들을 가르치며 딸도 시집을 보내줬다.
사실 진궁은 원래는 조조의 책사였다. 그는 칠성검으로 동탁을 암살하려다 실패한 뒤 도망 다니던 조조를 벼슬을 버리면서까지 조조를 놓아주고, 조조를 따랐다. 그러나 조조가 도주하다 자신의 의형제 아버지인 여백사(呂伯奢)를 오해해 그 일가를 죽이면서 이를 무마하기 위해 여백사마저 죽이게 된다. 진궁은 조조의 비정함을 본 뒤 조조를 버렸던 것이다. 진궁은 나중에서야 조조의 됨됨이와 그릇을 파악했던 셈이다.
이 대목에서 불현듯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라는 자연과학이론이 생각난다. 로봇이라는 개념이 지구촌에 등장한 건 1960년대였다. 지금은 인공지능 개념인 AI(Artificial Intelligence)가 더 가깝게 다가오지만 말이다. 우리가 로봇 등 인간이 아닌 존재를 볼 때, 그것과 인간 사이의 유사성이 높을수록 호감도도 높아지지만,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오히려 불쾌감을 느낀다는 이론이 ‘불쾌한 골짜기’다.
이 이론은 1970년 일본의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가 처음 소개했다. 앞서, 불쾌하다는 개념은 1906년 독일의 정신과 의사 에른스트 옌치가 먼저 사용했다. 이‘불쾌함’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모리 마사히로는 이렇게 정의를 내렸다.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존재가 정말로 살아 있는 게 맞는지, 아니면 살아 있지 않아 보이는 존재가 사실 살아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심을 뜻한다.” 인간의 이중적인 자존심 사고(思考) 시스템이다.
모리 마사히로에 따르면 인간은 로봇이 인간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을수록 호감을 느낀다. 인간이 아닌 존재로부터 인간성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정도가 특정 수준에 다다르면 갑자기 거부감을 느낀다. 이 경우에는 오히려 인간과 다른 불완전성이 부각돼 이상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수준을 넘어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인간과 많이 닮았다면 호감도는 다시 상승한다. 이처럼 급하강했다 급상승한 호감도 구간을 그래프로 그렸을 때 깊은 골짜기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불쾌한 골짜기 이론’으로 명명됐다.
2천년의 시공을 훌쩍 뛰어 넘어 진궁이 조조를 포기한 연유를 이 이론에 얹혀 분석해보면 진궁 입장에서 볼 때 조조가 진정성 있는 정치인이 아니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이 이론은 대한민국 정치에도 적용될 수 있다. 최근 이른바 반대를 위한 정치, 즉 정쟁을 위한 정치 메커니즘으로 일컬어지는 비토크라시(Vetocracy)로 여야가 극심한 갈등구조를 겪으면서 대한민국 정치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따갑다. 어쩌면 진정성 있는 정치인도 아닌 부류가 정치인 행세를 하는 대목에서 국민들이 ‘불쾌한 골짜기’를 느꼈을 듯싶다. 무릇 국민의 마음, 즉 민심(民心)을 읽지 못하면 더 이상 정치인이 아니다. 꼭 정색해서 말한다면 사이비 정치인일 뿐이다.
우리의 정치가 마냥 부정적인 지점에서만 머무른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일부 야당이 논란을 거듭하고 있는 사안이나 이슈들을 정치로 풀지 못하고 소위 광장정치나 포플리즘 관점으로 해결하려고 시도하고 있지만, 이 사안의 해결문제를 다시 국회 안으로 들여온다면 정치는 다시 정상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국민은 정치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을 던질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정치는 정쟁을 뛰어 넘을 수 없고, 국민의 눈물도 닦아 줄 수도 없다. ‘불쾌한 골짜기 이론’도 그렇게 충고하고 있다. 다른 게 틀린 건 아니겠지만, 다른 것 가운데는 틀린 것도 있다는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요즘이다.
허행윤 수원화성신문 편집국장
|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