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행윤칼럼] 비토크라시, 이젠 한국 정치에서 사라져야 할 때다

해묵은 정당·정파간 헤게모니·프레임 싸움도 청산해야 할 적폐다

허행윤기자 | 기사입력 2019/09/19 [11:10]

[허행윤칼럼] 비토크라시, 이젠 한국 정치에서 사라져야 할 때다

해묵은 정당·정파간 헤게모니·프레임 싸움도 청산해야 할 적폐다

허행윤기자 | 입력 : 2019/09/19 [11:10]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최초 흑인 대통령이다. 백인들이 60~70%를 차지하는 미국 사회에서 흑인 출신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건 감동이었다. 그것도 독일 북서부에서 브리타니아로 건너온 게르만계의 한 파인 앵글로 색슨 출신 백인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미국 사회에서 말이다. 그는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세계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 가운데 한 명으로 자리를 매김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그가 흑인으로 태어날 때부터 온갖 시련과 편견 등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던 건 숙명이었다. 그래서 마음을 굳게 다져야만 했다. 자신에게 닥쳐왔던 시련과 장애 등을 피하기에만 급급했다면 짧은 정치경력과 47세라는 젊은 나이에 미국 대통령에 오를 수 없었을 터이다. 늘 새로운 도전들을 늠름하게 극복했던 그 불굴의 용기가 미국인들에게 던졌던 신선한 메시지였다.
  
그가 대선 출마를 선언한 곳도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 투쟁을 선언한 일리노이 주 스프링필드였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등 유력 후보들과 경쟁했다. 이어‘변화와 희망’을 앞세워 민주당 내 첫 경선지였던 아이오와 주 코커스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돌풍을 일으켰다. 이후 2008년 11월4일 치러진 대선을 통해 공화당 존 매케인 후보를 더블 스코어로 누르고 당선됐다.

 

그는 연임에도 성공해 10여 년 동안 미국 대통령으로 재임하면서 많은 성과를 거뒀다. 강산이 한 차례 바뀌는 동안 공약이었던 ‘변화와 희망’을 기치로 교착상태에 빠졌던 중동 평화회담을 재개하는 데도 주력했다. 지금은 다시 갈등을 빚고 있지만, 잠깐 동안의 평화도 이어졌다. 핵무기 감축과 대화와 타협 등을 통한 국제분쟁 해결에도 올인 했다. 기후변화 대응 등에도 주력했다.

    
그랬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도 위기가 닥쳤다. ‘오바마 케어’라고 부르는 의료보험 시스템 개혁 법안이 단초였다. 이 법안은 민영보험에만 의존하던 기존 의료보험 시스템을 바꾸고, 모든 국민의 건강보험 가입 의무화를 골자로 하고 있다. 미국 내 3천200만 명의 저소득층 무보험자들을 건강보험에 가입시키고 중산층에 보조금을 지급해 의료비 부담을 낮추고자 하는 정책이었다. 물론, 보수 성향의 일부 중산층에게는 마땅찮은 정책이기도 했다.

 

법안에 따르면 대다수 국민에게 2014년까지 건강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벌금을 부과한다. 2014년에는 1명당 벌금이 95달러지만 2016년에는 695달러로 시간이 지날수록 벌금 액수는 커진다. 건강보험금은 가구당 가족 수와 소득 기준으로 정부가 차등 지원한다. 월 보험료와 공제금, 의사 상담 및 처방전 발급 시 본인 부담금 비율 등에 따라 차등 지급된다.
 
결국, 공화당은 이 법안을 놓고 민주당은 물론, 오바마 정부와도 극단적으로 충돌한다. 미국 내 오피니언 리더들은 이를 놓고 공화당이 정책의 내용은 간과하고 반대를 위한 반대에만 집중하고 나섰다고 비판했다. 이 시기  <역사의 종언〉으로 유명한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도 <비토크라시가 미국 정치를 지배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비판에 가세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가 자신의 칼럼을 통해 사용한 비토크라시(Vetocracy)라는 단어는 거부권(Veto)과 통치(Cracy)가 결합된 신조어로, 상대 정파의 정책과 주장을 모조리 거부하는 극단적인 파당 정치를 일컫는 표현이다. 다시 말해 한 정파의 고집스런 거부권 행사로 이도저도 하지 못하는 무결정의 상태가 지속되는 정치체제를 뜻하기도 한다. 대통령제 특징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정치학자들은 의회의 다수파가 행정부를 맡고 책임정치 결과에 따라 임기 중에도 내각 교체나 조기 총선을 치르는 내각제에선 비토크라시가 발생할 일이 거의 없다고 진단한다. 반면,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각각 고정된 임기로 생존에 영향을 받지 않는 대통령제에선 교착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 여소야대일 경우에는 더 빈번하다. 비토크라시는 교착이 고질적 상태를 지칭하기도 한다.

 

‘오바마 케어’를 두고 민주당과 공화당 양대 정당이 극한적으로 대립했던 미국은 결국 16일 동안이나 연방정부가 문을 닫고 아무런 업무도 진행하지 못하고 손을 놓아야 했던 ‘셧다운(Shut Down)’사태로까지 이어졌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정치학계는 이를 놓고 양당제 단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때가 지금으로부터 햇수로 불과 6년 전인 2013년이었다. 물론 미국의 경우였지만 말이다. 

 
비토크라시가 꼭 미국에만 적용되는 현상일까? 미국과 유사한 정치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는 우리의 요즘 정치와도 데칼코마니처럼 닮았다. 추석 연휴를 지나고도 여야의 극한 대립은 끝이 보이질 않고 있다. 조국 법무부장관의 사태로 빚어진 정국인 만큼, 비토크라시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이유가 어찌됐든 여야의 극한대립의 피해와 고통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정치권은 가슴에 손을 얹고 성찰해보라. 당신들이 수없이 남발하는 정치적인 수사(修辭)가 국민들을 고통에 빠뜨리는 비토크라시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를 말이다. 비토크라시도 모름지기 마땅히 청산해야 할 우리 시대의 적폐이기 때문이다.
허행윤 수원화성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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