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이란 고장이 있다. 이은상 시인이 노랫말을 쓰고, 작곡가 김동진 선생이 곡을 만든 <가고파>라는 가곡의 고향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로 시작되는 이 가곡을 들으면 마산이 클로즈업된다. 고교시절 성악을 전공했던 음악 선생님은 이 가곡을 부르기 전에 늘 마산의 빼어난 풍광을 곁들여 설명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해마다 4월은 벚꽃의 계절이다. 벚꽃이 피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고장이 진해다. 일제강점기부터 해군기지가 있었고, 해방 이후 해군본부와 해군사관학교가 있는, 대한민국의 군항(軍港)이다. 연분홍빛 벚꽃이 활짝 피는 계절이면 도시 전체가 온통 축제의 물결로 술렁거린다. 쪽빛 바다의 색깔이 너무 고와서 동양 최고의 미항(美港)으로 불리는 아름다운 도시다.
창원은 지난 1970년대까지만 해도 관할 행정기관이 출장소에 그칠 정도로 보잘 것 없었던, 한적한 고장이었다. 경남 최대 철새 도래지로 유명한 주남저수지를 빼놓고는 별다른 문화 콘텐츠도 없던 곳이었다. 하지만, 국내 최초 도시계획으로 정연하게 건설된 산업도시라는 이미지와 너비 40m 간선도로를 중심으로 격자 상으로 뻗은 가로망이 시원한 도시이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마산과 진해라는 유서 깊고 아름다운 도시 2곳이 지난한 정치적 협상과 행정적인 조율 등을 거쳐 시(市)에서 구(區)로 창원시에 통합됐다. 지난 2010년 7월이었다. 통합시 출범 당시 명칭으로 ‘마창진’, ‘진창마’, ‘창마진’ 등 여러 안들이 나왔지만 결국 창원시로 결정됐다. 준(準) 광역시가 된 셈이다. 요즘에도 곧잘 ‘마창진’으로 불리곤 한다.
생뚱맞게 통합된 창원시의 연혁을 꺼낸 까닭은 무엇일까.
조선시대에는 이처럼 넓은 고을을 통치했던 지방수령으로 유수(留守)라는 관직이 있었다. 경기도에 국한됐지만 광주(廣州)나 개성, 강화, 수원 등지의 수령은 정2품, 또는 종3품의 유수가 통치했다. 오늘날 버전으로는 광역 지방단제장이다. 당시로선 광활했던 고을을 통치하는데 비교적 효율적이었을 지도 모른다.
마산시와 진해시가 구(區)로 흡수 통합된 창원시와는 상반된 역사를 지닌 고장이 바로 수원·화성·오산이다. 이들 3개 시는 애초 수원군에 속했던, 같은 생활권이었다. 그러다 지난 1949년 수원군에서 화성군이 분리됐고, 이어 지난 1989년 화성군에서 오산읍이 오산시로 떨어져 나갔고, 지난 2001년 화성군이 시로 승격됐다. 70여 년 전에는 같은 생활권에 같은 권역이었고, 같은 고을이었다.
이들 3개 시는 정조대왕의 개혁사상이 녹여진 고장들이다. 백성을 아끼고 사랑하는 정조대왕의 애민사상이 깃든 조선후기 문화 부흥의 중심지였고 민생과 산업, 국방 개혁 등의 전초 기지이기도 했다. 당시 이 고을들을 광역 지방단체장인 유수가 다스린 건 당연한 일이었다. 역사적, 생태적, 문화적 공통분모를 갖춘 한 뿌리의 지역공동체였기 때문이다.
수원·화성·오산시 상생발전이 탄력을 받고 있다. 이들 지자체는 앞서 지난해 5월 지역공동체‘산수화’를 결성한 바 있다. ‘산수화’는 오산의 ‘산’, 수원의 ‘수’, 화성의 ‘화’를 딴 이름이다. 지난해 말 MOU 체결에 이어 최근 화성 융건릉에서 공동 번영을 위한 ‘산수화 상생협력협의회 출범식’을 열어 선언문 발표와 시민 중심 가치를 구현하는 도시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선언문은 역사, 생태, 문화의 공통분모를 갖고 있는 정조문화권역 3개 도시가 지역의 한계를 극복하고 장점은 융합해 수도권 서남부의 중심 도시로 도약하기 위한 의지를 담았다. 화성 문화제 공동 추진 등 문화협력사업, 교육·교통·환경 등 주민편익 협력사업, 갈등 현안 발생 시 합리적 대안 마련 및 긴급 재난 공동 대응 추진도 본격화된다.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
상생협력협의회는 이들 도시의 상생 발전을 위한 핵심 기구다. 각 도시 별로 8명씩 공동 안배돼 모두 24명으로 구성됐으며, 3개 도시 시장과 지역 국회의원 등이 공동위원장을 맡고, 시의원, 주민대표, 공무원 등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정례회의는 반기별 1회 열고 필요 시 임시회의를 개최한다. 상생발전 방안마련 및 협력에 관한 사항 등도 제안·심의·의결한다.
장기적으로는 행정경계 조정, 한강~평택호 자전거 도로 조성, 버스노선 연결, 도로 신설·확장, 수인선 협궤터널 명소화사업 등도 추진된다. 특히, 행정경계로 인한 주민들 간 갈등 해소가 현안 사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만큼, 상생협력협의회를 통한 갈등이 해소된다면, 상생협력협의회가 지방자치단체 간 갈등을 중재하는 효율적인 기구로 거듭 날 것으로 기대된다.
우연찮게도 지역공동체 이름인 ‘산수화’와 동명인 산수화 꽃의 꽃말이 ‘영원한 사랑, 불변, 지속’이다. 정조대왕 문화권 도시들이 협력을 통해 효율적으로 지역공동체를 운영해나간다면, 유수라는 지방수령이 없더라도 시민들이 살기 좋은 고을이 되기에 충분할 터이다. 필자만의 지나친 망상일까.
허행윤 수원화성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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