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버려진 땅이었다. 조율되지 않은 첼로처럼 수줍었다. 땅 이름도 나무나 숲들의 재고품 창고라는, 다소 목가적인 뜻이었다. 지명(地名)도 예사롭지 않았다. 그곳에서 한 흑인 청년이 일렉트릭 기타로 미국 국가를 연주하고 있었다. 연주한다기보다는 뜯고 있었다. 운집했던 젊은이 수십만 명이 포효(咆哮)했다. 1969년 8월 미국 뉴욕 남동부 황무지 우드스톡(Woodstock)이었다.
기타리스트는 시애틀 출신 지미 핸드릭스(Jimmy Hendrix)였다. 그가 그 척박한 땅에서 연주했던 국가는 <The Star-Spangled Banner>였다. 우리가 <성조기여 영원하라>고 잔뜩 부풀린 의역(意譯)을 통해 알고 있는 그 곡이다. 그냥 <성조기(星條旗)>라고 불러도 되는데 말이다. 록음악의 기념비적인 행사인 우드스톡 뮤직 페스티벌(The Woodstock music and art fair) 현장에서였다.
당시 우드스톡이라는 지역은 음향시설도 형편없었고, 음식과 물은 물론 화장실도 턱없이 부족했다. 때 마침 폭우까지 쏟아지면서 거대한 진흙뻘로 둔갑됐다. 이처럼 열악한 상황도 페스티벌에 참가한 젊은이들의 열기를 누그러뜨리진 못했다. 부족한 샤워시설은 관중들이 물장구치는 물웅덩이로 대체됐고, 진흙뻘은 되레 놀이터로 변했다. 모든 장르의 록음악이 총집결된 잔치판이었다.
그해 미국에선 반전운동과 민권운동 바람이 거세게 불어 닥치고 있었다. 우드스톡 뮤직 페스티벌은 곧 저항문화 축제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행사가 열린 장소의 행정지명은 우드스톡이 아니라, 베텔이었다. 포크 가수 밥 딜런(Bob Dylan)의 고향인 우드스톡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주민들이 미국 전역에서 숱한 젊은이들이 몰려들 것을 우려, 반대하는 바람에 이곳에서 열리게 됐다.
중요한 건 지미 헨드릭스라는 청년이 보여준 국가 연주의 추임새였다. 이전에 그 어떤 기타리스트도 보여주지 않았던 장르였다. 예컨대 이 젊은이의 국가 연주는 노래를 부르지는 않았어도, 그 일렉트릭 기타를 뜯고 비트는 손놀림을 통해 관중은 당시 미국이 추진했던 베트남 전쟁에 대한 비아냥거림이었음을 온 몸으로 동의하며 환호하고 있었다. 반전(反戰)과 평화라는 힘찬 물결의 시작이었다.
사실 우드스톡 뮤직 페스티벌의 기폭제는 1년 전, 프랑스 파리에서 태동됐던 68혁명이었다. 프랑스 대학생들이 마침내 베트남 전쟁에 저항하고 나선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였다. 프랑스가 오랜 시간 지배했고, 유린했던 베트남이었다. 하지만, 프랑스는 어느날 갑자기 야반도주하듯 철수했다. 그리고 청년들은 분노했다. 세계 최강의 보수정권이었던 드골 집권 기간이었다. 청년들은 거리에서“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외치고 있었다.
독일에서도 비슷한 반미운동이 펼쳐졌다. 독일은 미군 주둔 국가였다. 극좌 적군파인 바더-마인호프 그룹이 등장했다. 그런 토양에서 반전운동의 다른 이름인 플라워 무브먼트(Flower Movement)가 젊은이들을 뭉치게 했다. 저항이라는 태생적인 DNA가 대서양을 건너 우드스톡으로 젊은이들을 모이게 했다. 우드스톡은 이후 저항정신을 함유한 록음악의 성지로 역사에 기록됐다.
그렇게 시작된 우드스톡 뮤직 페스티벌은 지구촌 곳곳에서 반전·평화운동으로 퍼져 나갔다. 동아시아 한켠에서도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시위로 이어졌다. 그런 와중에서 권력은 장기집권 플랜을 준비하고 있었다. 조안 바에즈(Joan Baez)가 우드스톡에서 열창했던 <We shall overcome>이 대학가에서 불려졌다. 그러나 통일은 요원해졌다. 남북 간 긴장이 심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구촌 곳곳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전쟁 반대와 평화를 외치며 스러져 갔다. 산업화와 더불어 민주화를 이뤄냈던 몇 되지 않는 국가인 대한민국에서도 청년들의 고귀한 희생이 계속됐다. 그때부터 무려 반세기의 시공을 훌쩍 뛰어 넘은 한반도의 긴장은 그러나 아직도 유효하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의 포성은 끊이지 않고 있지만, 그 이전에 발생했던 전쟁들은 대부분 끝났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평화를 기다리고 있다. 물론, 잠시 중단은 됐지만, 수십 년 만인 지난해부터 재개된 남북과 북미간 대화는 계속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경기도가 남북협력 사업을 위한 물밑 작업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경기도의 이 같은 움직임의 바탕에는 유엔의 대북제재(對北制裁) 등 국제사회 규제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에서 평화 분위기 확대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이재명호의 남북협력사업 핵심은 북한과의 평화적 교류 협력이다. 문화·체육·관광분야를 중심으로 남북 간 관계 회복에 집중이다. 남북경협 등에 당장 나서기 힘든 가운데 상대적으로 가볍게 움직일 수 있는 광역자치단체 입장에서 뛰겠다는 전략으로도 읽힌다. 하노이 북미협상 지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능성은 유효하다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경기도의 정책방향 키워드는 ‘느리지만 섬세하게’다. 사회·문화 분야 교류 사업은 남북 공동 일본 강제동원 진상 규명 토론회, 남북 예술단 교류공연, 고려역사박물관-경기도박물관 교류전, 남북체육교류, DMZ 세계자연유산 등재 추진, DMZ 국제다큐영화제 남북 교류, 도자로 잇는 남북 평화 비엔날레, 남북 전통음식 교류대전, 파주-개성 평화마라톤 대회 등이다.
농축산림·수산 등 개발협력분야는 농림복합형 시범마을 운영, 국제녹색시범지대 개발협력, 북측 화훼산업 기술협력, 농업 생산량 증대용 유기질 축분비료 지원, 양계장·양돈장 현대화, 가축전염병 예방, DMZ 및 접경지 동물 질병조사 협력, 산림녹화, 한강-임진강 공동조사, DMZ 세계생태 평화공원 조성 등으로 압축됐다.
인도적 지원·경제협력분야로 북측 결핵환자 치료사업, 남북 말라리아 예방 관련 사업, 북측 장애인 보장구 지원 시범사업, 어린이 건강사업, 옥류관 경기도 유치, 한강하구 남북공동수계 평화적 활용, 경기도 평화관광 추진 등도 빼놓을 수 없다. 어느 것 하나라도 버릴 게 없는 실효적이고도 실용적인 사안들이다. 남북에게 모두 공동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아이템들이기도 하다.
경기도는 현재 계획 중인 정책에 대한 세부사항 정리와 추진방안 마련 등에 힘을 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으로 옥류관 유치가 있다. 이 경우, 장소와 규모 등을 놓고 북측과 협의에 시간이 좀 더 필요한 사안이다. 4·27 판문점 선언 1주년을 맞아 다음 달 열릴 예정인 파주-개성 평화마라톤은 남북 간 공감대를 살려 세부 일정 조율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릴리 마를렌(Lili Marlene)이라는 독일의 대중가요가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졌을 때 독일이 자국 병사들을 위해 3분 분량의 노래를 북아프리카 전장으로 송출했다. 그 방송 주파수를 맞추면 영국군도 같이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영어 버전도 만들었다. 영국 병사들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해서였다. 이 노래가 흘러나오는 시간만큼은 병사들이 전쟁을 잠시 멈추고 들었다.
노랫말은 1915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군대에 징집된 함부르크 출신의 한스 라이프(Hans Leip)가 썼다. 제목은 그의 애인인 릴리와 군 간호사 마를렌의 이름 조합으로 만들어졌고, 1939년 랄레 안데르센(Lale Andersen)에 의해 녹음됐다. 이후 1941년 독일군 방송이 된 벨그라데 라이오 방송(Radio Belgrade)이 음반 더미에서 이 앨범을 찾아냈다.
우리는 바로 이 노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쟁은 서로 총을 겨누고 싸우는 과정이다. 이런 과정의 중단이 계속 이어지면 휴전이 되고, 휴전은 곧 종전으로 종결될 수 있다. 20세기 중반, 지구촌의 많은 젊은이들이 전쟁 반대와 평화 정착을 외치며 시작됐던 운동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한반도에선 대한민국과 미국과 북한 당국의 협상이라는 방식으로 계속되고 있을 뿐이다.
미래학자인 아놀드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는 인류의 역사 발전을 가져 오게 하는 모멘텀은 ‘까닭 있는 분노’라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대로 라면 역사를 바꾸는 주체는 집단 지성이지만, 원동력을 제시하는 주체는 집단 감성이다. 통일도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으로 이뤄내야 하는 민족의 숙원사업이다. 최근 북미협상 지연에도 경기도의 끊임없는 남북협력사업 추진이 반가운 까닭이다.
[허행윤 수원화성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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