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행윤 칼럼] 오늘부터 1일이다. 또다시 시작하자

올해 사자성어, 일이 뜻대로 됨 뜻하는 마고소양(麻姑搔痒)
젊음은 언제나 늘 그랬듯 불가능도 가능하게 만들 수 있어

허행윤 | 기사입력 2019/01/04 [09:23]

[허행윤 칼럼] 오늘부터 1일이다. 또다시 시작하자

올해 사자성어, 일이 뜻대로 됨 뜻하는 마고소양(麻姑搔痒)
젊음은 언제나 늘 그랬듯 불가능도 가능하게 만들 수 있어

허행윤 | 입력 : 2019/01/04 [09:23]


그때는 그랬다. 교련 과목 펑크로 최전방 부대에서 3년을 꼬박 채워 복무한 뒤 복학한 캠퍼스는 삭막, 그 자체였다. 발부리에 흙바람이 푸석푸석 채일 때마다 최루탄 냄새로 눈물이 흘렀다. 강의실마다 책·걸상들이 물구나무를 서고 있었다. 중앙도서관 앞 시계탑은 꾸부정하게 서 있었다. 하늘은 온통 잿빛이었다. 어떤 시인은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고 썼다.
   
김수영의 시와 카뮈의 소설을 읽던 그 시절은 우울했다. 그 와중에도 영악한 친구 몇몇은 대기업에 입사했고, 또 누구는 고시를 패스한 뒤 막걸리를 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한 녀석은 신춘문예에 도전했고, 새해 아침에 배달된 신문들을 펼쳐 들고 낙선을 확인했다. 고결한 문학을 포기하는 대신 1단 기사에도 만족해야 하는 신문기자가 됐다. 필자의 아날로그 시절 얘기다.

 

그렇게 정든 교정을 떠났던 젊은이들은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하고 아기들을 낳았다. 밤늦도록 일과 매달리면서도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라의 미래를 생각했다. 뛰었고, 달렸고, 달음박질 쳤다. 주름살이 훈장처럼 늘었지만 하나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회사와 결혼했느냐”는 핀잔도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 그 사이 나라는 세계 10대 무역국에 들었다.         
40년의 시공을 뛰어 넘어 그 캠퍼스에서 또 젊은이들이 거닐고 있다. 더러는 졸업을 미루며 햇빛도 안 들어오는 고시원에서 토익과 씨름하고, 누군가는 스펙을 더 쌓기 위해 교환학생으로 나가고, 어떤 이는 공시 준비를 위해 노량진으로 떠난다. 등록금 때문에 진 빚을 갚기 위해 휴학을 하는 친구도 흔하다. 가슴은  뜨거운데도 이성 친구 연모는 사치인가. 우리 아들·딸들의 눈물겨운 필모그래피다.
                  
대체 누가 이처럼 힘겨운 역정을 젊은이들에게 물려준 것일까? 한 때는 거친 들녘을 튼실한 근육으로 훨훨 날아 다녔던 우리 기성세대다. 1세기가 훌쩍 걸린다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단 30년 만에 이룬, 그래서 세계도 깜짝 놀랐던 세대였다. ‘우리’라는 대명사 앞에 늘 ‘자랑스러운’이라는 형용사가 부끄럽지 않았었다. 어느새 머리에 서리가 하얗게 내린 전후세대의 초상화다.         
요즘 한 취업 전문 사이트가 직장인 88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5%가 마고소양(麻姑搔痒)이라는 사자성어를 꼽은 것으로 나타났다. 마고소양은 마고라는 손톱이 긴 선녀가 가려운 곳을 긁어 준다는 말로, 일이 뜻대로 됨을 가리키는 말이다. 삼을 뜻하는 마(麻)에 시어미 고(姑), 긁을 소(搔), 가려울 양(痒) 등 4개의 한자가 결합돼 만들어진 이 성어의 뉘앙스가 의미심장하다.

 

마고소양의 원전은 중국 고전 <신선전(神仙傳)>의 <마고(麻姑)> 편이다. 한나라 환제 때 마고라는 선녀가 수도인 장안에 들어와 채경(蔡經)이라는 관리의 집에 머물렀다. 마고의 손톱은 사람의 손톱과는 달리 길고 뾰족해 마치 새의 발톱처럼 생겼다. 채경은 마고의 손톱을 보는 순간 마음속으로 “만일 등이 가려울 때 저 손톱으로 긁는다면 얼마나 시원할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채경의 이 같은 생각은 바로 선녀들에게 읽히고 말았다.  방평(方平)이라는 선녀가 마음속으로 중얼거린 채경의 생각을 읽었기 때문이다. 방평은 곧 사람들을 불러 그를 끌어다 채찍질하고는 이렇게 꾸짖었다. “마고는 선녀이다. 너는 어찌해서 불경스럽게도 마고의 손톱으로 등을 긁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느냐.”

 

마고소양은 이처럼 힘이나 능력을 가진 사람의 도움으로 자기가  원하는 바를 뜻대로 이룸을 가리키는 사자성어다. 오늘날에는 뜻이 확대돼 자기 일이 뜻대로 이뤄짐을 비유하는 말로도 쓰인다. 요즘 젊은이들이 얼마나 힘들면 올해 사자성어로 선택했을까. 취업이든, 창업이든, 결혼이든, 육아든 이들에게는 무엇 하나 쉽지 않은 게 엄연한 현실인 탓일까.

 

그래도 우리의 아들과 딸들에게 진부하겠지만 이렇게라도 격려하고 싶다. 여러분들의 척박한 환경을 물려줘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은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부모세대도 편탄찮은 길을 걸어왔다고 말이다. 그런데도 결코 희망과 의지 등은 잃지 않았다고 말이다. 그러니 “오늘부터 1일”이라고 다짐하고 다시 용기를 내자고 말이다. 정치도, 경제도 지난(至難)하겠지만, 젊음은 늘 불가능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말이다.


[허행윤 수원화성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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