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군 칼럼] 자연과 예술을 잇는 꽃, 수원의 히어리자연에게 길을 묻다! 화산 최재군 나무의사가 들려주는 인문학 강좌 15
봄을 가장 먼저 여는 노란 꽃 겨울의 매서운 바람이 물러가고 대지에 온기가 감돌기 시작하면, 봄의 전령사들이 하나둘 꽃소식을 전한다. 개나리, 진달래, 산수유가 익숙한 봄의 얼굴이라면, 그보다 조금 먼저 세상에 노란 미소를 띠는 나무가 있다. 이름도 다소 낯선 ‘히어리’다. 진달래처럼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는 아니기에, 히어리의 존재를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러나 자연을 가까이하는 이들, 특히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히어리꽃은 봄의 시작을 알리는 반가운 손님이다. 봄볕 아래 귀고리처럼 매달린 노란 꽃송이가 피어 있는 모습에 수목원을 찾은 사람들은 저절로 발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빼앗긴다.
수원의 상징이 된 히어리 수원시의 시화(市花)는 진달래이지만, 그와 나란히 수원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꽃이 바로 히어리다. 수원시가 히어리를 심고 가꾸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과거 광교산은 히어리의 북방 생육 한계선으로 알려져 있으며 환경부 지정 보호종이었던 만큼 생태적 가치가 높다. 수원시는 이를 지역의 깃대종으로 삼아 보전과 활용을 병행하고 있다. 일월수목원에서는 히어리를 상징 수목으로 지정해 집중적으로 관리하고 있으며, 대강당 이름 또한 ‘히어리홀’이라 할 만큼 각별한 애정을 쏟고 있다.
이름과 생태, 그리고 유래 히어리는 ‘납판나무’, ‘송광꽃나무’, ‘조선납판화’ 등 여러 이름으로도 불린다. 순수한 우리말 이름인 ‘히어리’에는 아직 한자로 표기된 사례가 없다. 그만큼 이 땅의 자연과 함께해 온 고유한 식물임을 뜻한다. 전남 지리산과 순천 조계산, 그리고 수원의 광교산에 자생지가 확인되었고, 최근에는 포천에서도 발견되어 개체수가 늘면서 보호종에서 해제된 바 있다.
키가 작은 관목인 히어리는 지면 가까이에서 여러 줄기가 발생하여 높이 3~5미터까지 자란다. 잎은 어긋나고 심장형으로 가장자리에 물결 모양의 톱니가 있으며, 뒷면은 은회색빛을 띤다. 잎 모양이 개암나무와 비슷해 영어 이름도 ‘Korean Winter Hazel’, 즉 ‘한국의 겨울 개암나무’라 불린다. 봄이면 잎이 나오기 전에 길게 늘어진 총상꽃차례에 6~8개의 노란 꽃이 피어 포도송이처럼 달리며, 그 모습이 마치 귀부인의 귀고리를 연상케 한다.
히어리는 조록나뭇과에 속하며 풍년화와 같은 속성을 가진다. 남도의 산기슭에서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나무로, 이름의 유래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중 ‘시오리(약 6km)’ 설이 특히 주목된다. 한때 거리 표시용 나무에서 비롯되었다는 해석도 있었으나, 순천 지역에서 ‘시오리’라 불린다는 향명(鄕名)을 근거로 임동옥 교수는 다른 견해를 제시했다. 그는 히어리가 산림의 남사면이 아닌 북사면 계곡을 따라 약 시오리 간격으로 자생한다는 점에서, ‘시오리’가 단순한 거리 단위가 아닌 생태적 분포의 표현이라 보았다. 광교산 히어리 자생지가 북사면 계곡가에 자리하는 것도 이 해석을 뒷받침한다. 결국 ‘히어리’란 이름은 자연의 리듬과 지역의 언어가 어우러진 결과라 할 수 있다.
히어리 학명은 Corylopsis coreana이다. 일본에도 유사한 종이 있어 자주 비교된다. 도사물나무(C. spicata)와 일행물나무(C. pauciflora)가 그것이다. 세 종은 매우 닮았으나, 히어리는 꽃자루에 털이 없고, 도사물나무는 부드러운 털이 있으며, 일행물나무는 꽃이 훨씬 작다. 이러한 차이는 꽃이 피는 시기에 가장 뚜렷하게 구분된다.
수원의 문화와 예술로 피어나다. 수원시는 히어리를 단순한 자생식물이 아닌 도시를 상징하는 문화자원으로 바라보고 있다. 일월수목원에서는 히어리를 활용한 귀걸이·브로치 등 장신구 디자인 개발을 계획하고 있고, 꽃문양은 굿즈와 관광상품, 홍보물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히어리의 우아한 꽃 형태가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되며 수원의 도시브랜드와 자연의 이미지를 함께 살리는 노력을 하고 있다.
얼마 전 한미 정상회담에서 신라 금관이 미국에 외교 선물로 전해지며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금관의 정교한 장식과 늘어진 귀고리 모양은 마치 히어리의 꽃송이를 닮았다. 혹시 신라인이 자연 속 히어리에서 영감받아 금관의 형태를 만들지 않았을까. 천오백 년의 시간을 넘어 피어난 한 송이 꽃이, 지금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예술적 영감을 준다.
이제 겨울의 문턱에 서니, 문득 다가올 봄이 그리워진다. 광교산 북사면에서 가장 먼저 봄을 깨우는 노란 꽃, 히어리. 수원이 이 꽃을 지역의 상징으로 삼은 것은 단지 자생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히어리는 수원의 자연과 문화, 예술을 잇는 따뜻한 매개체로서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진달래와 더불어 시민의 마음속에 피어날 또 하나의 봄꽃인 것이다. 히어리가 꽃망울을 터뜨리면 수원의 봄이 시작된다. 노란 귀고리 같은 꽃송이가 바람에 흔들릴 때, 광교산의 봄도, 우리의 마음도 함께 깨어난다.
프로필 - 수원특례시 공원녹지사업소장 - 조경기술사 - 자연환경관리기술사 - 문화재수리기술자(조경) - 문화재수리기술자(식물) - 나무의사, 수목보호기술자 - 경기도시공사 기술자문위원 - 조달청 평가위원 - 왕의정원 수원화성(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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