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호 칼럼] 당신만의 사소함을 기억하라

김연호 | 기사입력 2025/09/18 [08:48]

[김연호 칼럼] 당신만의 사소함을 기억하라

김연호 | 입력 : 2025/09/18 [08:48]

▲ 김연호 수원시노사민정협의회 사무국장     ©수원화성신문

 

오후 6시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리면 거리에 있는 전 국민이 멈춰 섰다. 어디 있는지도 모르지만 태극기가 있을만한 방향으로 ‘국기에 대한 경례’자세를 취하며 애국가를 무조건 들어야 했다. 지금은 80년대 영화에나 나올만한 장면이지만 필자의 초등학교 시절에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고, 개인적으로는 ‘6시 일시 멈춤’ 조치로 인해 그 당시 불편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또래 친구들과의 딱지치기와 구슬치기도 무조건 멈춰야 했고, 화장실이 급해도 애국가가 끝날 때까지 급한 용무를 참아야만 했다. 만일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어린 마음에 국가에 뭔가 죄를 짓는 거 같은 느낌이 들어 그 찜찜함을 견디는 것도 내 개인의 몫이었다. 그 당시에는 필자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사소한 사정은 철저하게 무시되었다. 시민 스스로가 시간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주의적 국가가 집단 동원 체제 형태로 시민과 시간을 관리해왔다는 사실은 나중에 철이 들어서야 알게 됐다. 억지로 국민에게 애국을 강요하고 정권에 대한 충성을 세뇌시킨 그 국민의례의 뿌리는 일본 제국주의의 통치술이었다. 실제로 일제는 오전 6시 사이렌이 울릴 때 궁성 요배를 행한 후 라디오 체조를 강제했고, 낮 12시 사이렌이 울리면 멈춰서 정오 묵도를 강요했다고 알려져 있다. 일본의 그 잔재가 살아남아 내 소년기와 사춘기 시절을 불편하게 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괜히 억울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전체주의적 국가 통제 이외에도 집단주의 문화가 강한 한국 사회에서 개인의 사소한 목소리는 철저하게 무시되어왔다. 사실 민주주의 발전과 더불어 전체주의적인 통제 기제는 폐지가 되거나 그 강제 강도가 많이 약화되었다. 그러나 집단주의 문화는 사회 저변에 여전히 남아있다. 집단우선주의는 국가 차원은 물론이고 집단 차원에서도 강고한 조직운영 기제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건 네 사정이고 조직이 먼저지. 어떻게 너는 니만 생각하냐” 속칭 꼰대라는 소리를 딱 듣기 좋은 말이지만, 우리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말이다. 국가나 조직의 목표가 먼저이고 개인의 사소한 사정은 항상 뒷전이었다. 1970년대 산업화 세대도 조직이 먼저였고, 1980년대 민주화 세대에서도 조직이 먼저였다. 국가 재건, 경제 발전, 민주화, 세계화, 국가 경쟁력 등 이 세상의 큰 목소리에 다른 목소리는 설자리가 없었다. 대의명분이 늘 먼저였고, 개인의 사소한 사정은 무시되었고 소수는 희생을 강요받았다. 이 세상의 큰 목소리가 중요하지 않거나 불필요하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대의명분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 동참하는 개개인의 인권과 자유도 중요하고, 사회적 소수나 약자의 목소리도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특히 국가와 조직을 위해 헌신해온 우리 국민들에게는 이제 열린 마음으로 우리 모두의 사소하고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때가 온 것이다. 최소한 입특막, 타인에게 침묵을 강요하지는 말자.

 

전체주의적 통제에 개인의 사소한 사정은 철저하게 무시되어온 사회

세상의 큰 목소리에 저항하는 사소하고 작은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개인의 자유와 창의성을 억압하는 국가 폭력에도 사소한 저항이 필요해

개인의 사소한 경험과 기억이 독창성의 근간임을 주목해야

 

어찌 보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모든 것들이 사소한 것이지만, 그 사소한 것이 사소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사실 사소하다는 것은 세상의 큰 목소리들과 거대한 담론체계가 감안하지 않았거나 다루지 못했다는 의미이지, 특정 집단이나 개인에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의 개인적 아픔이나 생존권을 위한 노동자의 투쟁도 주변 사람이나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아주 개인적인 사소한 사정’일 수 있으나, 그 당사자에게는 전혀 사소하지 않은 절박한 문제일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불법 계엄과 같은 국가 차원의 반헌법적 사태에 대해서는 아직도 집단적 저항이나 투쟁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개인의 자유와 창의성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국가적 폭력이나 집단적 가해 문화에 대해서도 개인적인 수준에서의 사소하지만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한류문화의 확산이 가장 한국적인 것에서 출발했듯이, 한 개인의 사소한 사정으로부터 이 시대의 난제들을 풀어낼 해결책을 찾아보자. 개인의 사소한 경험과 기억이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독창성의 근간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하고, 그 사소한 사정에 관심을 가져보자. 이제 주변 사람의 사소한 사정이 무엇인지 나부터 먼저 살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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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YFLABOR 2025/09/18 [19:56] 수정 | 삭제
  • 한사람 한사람이 모여 사회가 되고 국가가 되는 것이지요. 한사람의 사정을 무시하면 언젠가는 내가 무시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 아자아자 송 2025/09/18 [16:28] 수정 | 삭제
  • 국기 하강식. 저에게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 민족을 평가할 때 모래알 민족 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나는 전세계 어느나라 보다 강한 공동체 의식의 민족이라고 자부한다. 위기에 강한 우리 민족. 전체주의 처럼 보일 수 있는 요소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그것을 뛰어 넘는 표현을 찾는다면 자유롭고 아름다운 구속, 그속에서 공동체 의식이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필자의 좋은 글에 오늘 기분 좋은 사색에 잠겨봅니다.
  • 아자아자 2025/09/18 [16:14] 수정 | 삭제
  • 국기 하강식. 기억이 나네요. 좋은 글을 읽으면서 사색에 잠겼네요. 저에게는 정말 좋은 기억입니다. 우리 민족을 평가할 때 모래알 민족 부정적인 말도 듣지만 전세계 어느나라보다 공동체 의식이 강한 민족이다. 전체주의처럼 이야기 할수도 있지만 가슴속 깊이 있는 우리의 공동체 의식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아름답고 자유로운 구속이라 할까 우리는 하나라는 생각을 다시금 떠오른게 하는 필자의 글에 깊은 공감을 하게됩니다.
  • 종만네 2025/09/18 [14:42] 수정 | 삭제
  • 예전의 집단주의적 사고방식에서 개인주의적 방식으로 전환된 시대... 사소한 것의 창의가 사회발전과 급속히 접목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미래여성 2025/09/18 [12:50] 수정 | 삭제
  • 추억소환 [응답하라 나의 젊은시절이여] 즐하루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 007 2025/09/18 [11:47] 수정 | 삭제
  • 어린시절 왜곡된 교육속에 세월이 흐른 지금 나를 생각해보는 글입니다. 사회가 노력한 만큼 모든분들이 존중받은 세상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막둥 2025/09/18 [11:17] 수정 | 삭제
  • 옛시절을 소환하게됩니다. 덕분에 좋은 추억들도 더불어~ 돌아보게되고 발전된 내일을 충전하게 해주는 좋은 글이네요~
  • 막둥 2025/09/18 [11:12] 수정 | 삭제
  • 어린시절을 자연스레 소환하게됩니다. 돌아보고.생각하게되고~ 좋은 글 입니다.
  • 궁금왕 2025/09/18 [10:43] 수정 | 삭제
  • 곧 60대에 접어드는 저에게 오래 전 일기장을 펼쳐보는 선물같은 글이네요. 그 예전 싸이렌 소리가 오늘도 귓가에 멤도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수원만세 2025/09/18 [10:42] 수정 | 삭제
  • 사회가 발전하다보니, 당연한듯 여기어졌던 것들이 당황스러운 일들이 되는 것들이 많아지고 있네요. 배려와 양보, 공동체의식이 더욱 강조되어야할 시대가되지는 않았나, 제 자신도 반성하게 되네요
  • 원더맘 2025/09/18 [10:37] 수정 | 삭제
  • 국기하향식...기억이 새로새록 합니다. 언제 없어졌지?하는 기억을 더듬으며 직가님의 글을 읽어내려갔습니다. 예전엔 당연한거라고 생각했던 사소함이 키가 크면서 생각도 자라고 비판도 하게되는 성장을 하게 된 듯 합니다
  • 민자 2025/09/18 [10:33] 수정 | 삭제
  • 글을 읽으니 과거와 비해 개인의 의견, 사소한 사정이 중요하게 변화하였다고 느끼면서도 더 자유롭고 발전한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주변 사람부터 사소한 사정을 챙겨야 한다는 메시지가 참 와 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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