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주와의 첫 만남은 강렬했다. 대학시절 시와 노랫말을 통해 만난 그의 언어는 섬뜩했고 두렵기까지 했다. 그의 시어는 너무나 처절했고 비장함이 묻어났다. 순간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올라왔지만, 그것을 내뱉을 수도 삼킬 수도 없었다. 지금도 필자가 그 당시에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를 설명할 길이 없다. “낫 놓고 ㄱ자도 모른다고/ 주인이 종을 깔보자/ 종이 주인의 목을 베어버리더라/ 바로 그 낫으로” 시인 김남주의 ⌜종과 주인⌟ 이라는 제목의 시다. 아 이게 뭐지, 두려움을 넘어 기이함까지 느껴졌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사실 시인 김남주는 ‘시인’으로 불리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에게 시인이라는 타이틀은 혁명에 대한 모독이자 통한의 생에 대한 누명이라는 의미였다. 정치적 암흑기였던 1980년대 그의 시는 선명한 정치적 신념과 열정적이었던 저항의 서사로 인해 대중의 사랑을 받았으나,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우리들의 관심에서 점점 더 멀어져 갔다. 안타까운 마음과 더불어 개인적인 궁금증이 생겼다. 우리의 소중한 공동체 가치가 무너지고 살벌한 무한경쟁체제에서 각자도생하고 있는 이 세태를 혁명전사 김남주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계엄과 탄핵으로 인해 80년대 정치 상황으로 회귀하려다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2025년 대한민국 민주주의 상황에 대해 그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김남주가 한국사회에 던진 화두를 지금의 시점에서 확인해 보고 싶었다.
몇 해 전 김남주가 잠시 소환된 적이 있었다. 2019년 조국혁신당 대표 조국이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 자신의 페이스북에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한 노래인 ‘죽창가’를 소개했다. 그 당시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조처에 대해 강경한 메시지를 내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조국은 “SBS 드라마 <녹두꽃> 마지막 회를 보는데, 한참 잊고 있던 이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나왔다”라는 글을 그 노래를 들을 수 있는 링크와 함께 개인 SNS에 올린 것이다. 그 죽창가는 조선 말기 동학농민군이 일본과 싸웠던 상황을 주제로 한 노래로 김남주의 시 ‘노래’에 담겨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노래는 원제목인 ‘노래’보다는 후렴구를 따서 ‘죽창가’로 널리 알려졌고, 1980년 중반 이후 운동권 가요로 많이 불렸다. 김남주의 시가 철 지난 노랫말인 줄 알았는데, 일본과 대립하던 정치적으로 민감한 상황에 소환되었고 정치권에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김남주가 살아왔고 시를 썼던 시대와는 정치적 상황이나 사회적 조건이 변했지만, 아직도 우리는 그의 언어를 필요로 했고 여전히 현실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필자도 하루하루 살아가는 날들이 팍팍하고 답답해서였는지 몰라도, 젊은 시절 내 잠든 영혼을 흔들어 깨웠고 그 시대의 아픔과 모순을 온몸으로 노래했던 그의 목소리가 문득 듣고 싶어졌다.
불의의 시대에 시인이기를 거부하고 혁명전사를 자임한 저항시인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불살랐던 영혼의 소리가 그리워 저항과 좌절을 넘어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길을 추구하며 그가 선택한 ‘자발적 무능’의 길이 의미하는 바를 되새겨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가 김남주가 노래했던 혁명의 시대는 물론 아니다. 그가 몸담았던 남민전 같은 혁명 전위대가 필요한 상황도 아니고, 자기의 모든 것을 걸고 만들었던 불법 유인물을 경찰 몰래 배포할 필요도 없어졌다. 아직도 시위와 집회가 필요하지만 김남주 시대와는 달리 공개된 광장에서 오히려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만일 해방둥이 김남주가 80대의 노객이 되어 지금도 살아있다면 이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낼까? 극단적 저항과 처절한 좌절의 서사가 갖는 힘은 약해졌지만, 결코 우리에게 듣기 좋은 발라드 가사 같은 말랑말랑한 말을 할 것 같지는 않다. 목소리 톤은 다소 낮아졌지만 여전히 단호한 자세로 인간의 주인인식을 강조하면서 우리의 나약함을 꾸짖지 않을까. 우리 모두가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며 역사적 책무와 인간적 의무를 강조할 것 같다. 환하게 웃으면서 넉넉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 이웃을 짓밝거나 상처 주지 말라며 “더불어 함께 살아가자”라고 얘기할 것 같다.
필자의 청춘시절 마음의 빚을 졌던 시인 김남주를 다시 생각하며 읽은 ‘김남주 평전’에서 가슴에 꽂히는 단어가 있었다. 바로 ‘자발적 무능’이라는 표현이었다. 김형수 시인은 김남주가 이웃들과 힘겨루기를 해야 하는 일상의 경쟁에서 언제나 ‘자발적 무능’의 길을 선택했고 바로 그 점이 김남주의 생애에서 가장 감동스러웠다고 강조하고 있다. 얼핏 생각하면 이 무한경쟁의 시대에 자발적으로 무능의 길을 선택하라고 얘기하면 정신 나간 놈이란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을 얼마나 무시하고 괴롭혀 왔는지는 굳이 역사공부를 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토대이자 근거인 자연과 대지를 인간의 욕심 때문에 얼마나 망쳐왔는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그 누구도 범접하기 어려웠지만, 시인 김남주가 걸어온 자발적 무능의 길이 의미하는 바를 다시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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