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군 칼럼] 수원의 버드나무 이야기자연에게 길을 묻다! 화산 최재군 나무의사가 들려주는 인문학 강좌 8
지난달 어느 날, 지인이 내게 물었다. “사람이 죽으면 동물이 아니라 나무로도 환생할 수 있을까?”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이다. 불교의 환생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 “나무로도 환생할 수 있겠지요.”라고 했다. 그 후로 나무의 환생에 대해 생각에 잠겼다. 나는 과연 무슨 나무로 환생하게 될까?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인연을 맺고 살아간다. 나무도 사람과 다르지 않다. 꽃이 예뻐 사랑받는 나무, 쓰임새가 없어 천시받는 나무, 다른 나무에 피해를 주며 기생하는 나무 그리고 서로의 사랑을 끊지 못하는 연인목도 있다. 요즘 천시받는 나무 중 으뜸은 아마도 버드나무일 것이다. 사람들은 버드나무를 쓸모없고 불필요하며 피해만 주는 나무로 여긴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하지만 나무는 저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있고, 이는 곧 자연의 순리이며 생태계를 유지하는 근간이 된다.
버드나무는 빠르게 자라는 나무다. 한여름 무더위 속 그늘을 제공하고 공기를 정화하며 사람에게 산소를 공급한다. 미세먼지를 흡수하고, 튼튼한 뿌리로는 하천을 정화하기도 하는 유익한 나무다. 우리 조상님들에게 버드나무는 쓸모 많은 나무였다. 유연한 잔가지는 생활용품인 소쿠리를 만드는 데 쓰였고, ‘키버들’이라는 이름은 알곡을 고를 때 사용하는 전통 농기구인 키(箕)의 재료가 되어 붙여진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버드나무는 가구와 땔감으로도 쓰이고, 옷 고리와 같은 생활 도구의 재료가 되었고, 유목지(柳木紙)라는 전통 종이의 원료가 되기도 했다. 형벌 도구인 곤장을 만들 때도 사용되었고, 심지어 버드나무를 태운 재(灰)는 화약을 만드는 재료가 된다.
조선시대에는 병조와 각 지방 관청에서 매년 사계절이 시작되는 날, 나무를 서로 비벼 새로운 불을 지피고, 그 불을 백성에 나누어 주는 풍습이 있었다. 이는 중국의 『주례』에 나오는 고사를 따른 것인데 새로운 불을 만들어 오래된 질병을 없애려는 일종의 의식이다. 또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는 청명(淸明) 일에 느릅나무와 버드나무로 불을 일으켜 나누어 주고 ‘청명화(淸明火)’라 했다. 이는 강한 버드나무 생명력을 상징하며 화살을 닮은 버들잎이 악귀를 물리칠 수 있다는 벽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
수원에서 버드나무는 어떤 의미일까? 수원의 옛 지명은 버드나무가 많아 ‘버드나무의 도시’를 상징하는 유천(柳川)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의 초기 이름도 바로 유천성(柳川城)이다. 1789년,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현재의 융릉(현륭원)으로 옮기며 그 길 위에서 ‘유천’이라는 지명을 자주 마주했다. 기록에는 ‘수원 신읍에서 상유천점(上柳川店)까지 5리, 그 사이에 향교 앞길과 유천대교가 있으며, 유천점에서 하유천 후평까지 5리’라고 적혀 있다. 이처럼 당시 수원 전역에 걸쳐 유천이라는 지명이 널리 쓰이고 있었다.
정조는 이 ‘유천’ 두 글자에 깊은 뜻을 담고자 했다. 정조는 유천성을 설계하며 남북으로 좁고 길게, 마치 버들잎처럼 만들 것을 영부사 채제공에게 지시했다. 이는 유천(柳川)이라는 지명의 의미를 성곽의 형태로 형상화하려는 의도였다. 정조는 성을 세 굽이로 꺾어 川(천) 자를 상징하게 하면 유천이라는 지명과 더욱 잘 어울릴 것이라 하였다. 당시 수원지역의 지명과 문화를 성곽의 이름으로 녹여낸 것이다.
수원 지역 문화에 버드나무는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정조 시대 이후 팔달시장 상인을 유상(柳商)이라 했다. 이는 개성의 상인 송상(松商)과 견줄 만한 의미가 있다. 유천의 순한글 말인 ‘버드내’는 현재도 사용되며 세류동 역시 버드나무와 관련된다. 또 수원 팔경의 하나인 남제장류는 수원천의 긴 제방에 늘어진 수려한 버드나무를 의미하고, 동양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자인 방화수류정의 이름은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버드나무 종류는 왕버들, 버드나무, 갯버들, 키버들 등 다양하다. 정조시대 수원에 많이 심어진 버드나무 종류는 버드나무와 왕버들일 가능성이 크다. 특히 왕버들은 정조가 좋아했을 개연성이 있다. 그 이유는 부친이 왕위에 오르지 못한 것에 대한 깊은 효심 때문이다. 그래서 ‘왕’ 자가 들어간 왕버들을 수원화성에 심고 부친이 죽어서라도 왕위에 오르기를 기원했을 것이다. 일반 버드나무는 수명이 짧지만, 왕버들은 오래 사는 나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왕버들의 수령은 300~400년은 기본이다. 도산서원 앞마당의 왕버들은 마치 승천하는 용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정조가 부친 사도세자를 마음속에서나마 왕으로 추숭 하고자 했던 그의 간절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세상이 변하여 현재의 버드나무는 민원의 대상이다. 도시에서 가장 천시받는 나무 중의 하나다. 과거 선조들이 즐겨 심고, 늘어진 버드나무의 풍경을 즐기며 시를 짓고 교류하던 나무가 후손의 변심으로 천대받는 것이다.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것은 꽃가루가 아닌 종자에 붙은 솜털이다. 이는 씨앗을 멀리 퍼뜨리기 위한 버드나무의 생존법이다. 최근에 버드나무의 솜털 뭉치에 불이 난 기사도 올라왔다. 그런데 이는 사람들의 실수다. 산불이 실화로 발생하는 것과 같다. 솜털로 인한 다소 불편한 점도 이해된다.
버드나무는 겨울이 오기 전에 꽃눈이 만들어지고 이듬해 봄에 꽃이 피고 씨앗을 퍼트린다. 솜털의불편함을 줄이려면 해동 이후 꽃이 피기 전에 가지치기하면 해결된다. 또 버드나무는 암수가 다른 나무다. 씨앗은 암나무에 맺히니 수나무 중심으로 심고 관리하면 솜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물론 버드나무의 종족 번식을 위해 어딘가에는 암나무가 있어야 한다.
조선시대 의관 전의순이 지은 원예서인 산가요록에 ‘버드나무의 뿌리 아래에다 우선 마늘(大蒜) 1개를 심으면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라는 내용이 있다. 재미있는 내용이다. 금 년에는 한 번 시도해 볼 참이다. 불가에서는 작양지(嚼楊枝)라 하여 버드나무 가지를 양치하는 데 사용했다. 특히 비구(남자 스님)가 탁발걸식을 할 때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18가지 도구 중의 하나가 버드나무 가지이다. 불가에서도 버드나무가 요긴하게 쓰인 것이다. 앞서 지인이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사람이 죽어서 나무로 환생할 수 있는가?” 이렇게 또 묻는다면 나는 “나무로 환생할 수 있고 버드나무로 환생하는 사람이 죽기 전에 가장 쓰임새가 많았던 사람이다.”라고 하겠다.
프로필 - 수원특례시 공원녹지사업소장 - 조경기술사 - 자연환경관리기술사 - 문화재수리기술자(조경) - 문화재수리기술자(식물) - 나무의사, 수목보호기술자 - 경기도시공사 기술자문위원 - 조달청 평가위원 - 왕의정원 수원화성(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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