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2025년 4월 4일 11시 22분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결정문에서 읽은 마지막 문장이다. 그 순간을 모든 대한민국 국민은 숨죽이며 지켜봤고, 필자 또한 사무실에서 탄핵심판 선고 생방송을 술친구와 함께 가슴 졸이며 보고 있었다. ‘파면’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필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이유 모를 허탈함이 밀려왔다. 지난 4개월간의 탄핵심판 과정을 언론 보도를 통해 돌아봤을 때 탄핵 인용은 당연한 결과였지만, 그 당연한 결과를 접했을 때 별안간 허전한 마음이 들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이 이렇게 오래 걸리는 사안이었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무너진 대한민국을 다시 세우고 헌법 수호와 민주 질서를 빠른 시간에 회복한 한국의 민주주의 역량을 칭송하는 외신 보도도 있었지만, 극단으로 갈라진 국민의 정치적 갈등을 어떻게 극복하고 국가적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과 함께 이제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철 지난 이야기이고 1990년 중반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 이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인물이지만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1870~1924)이 주도했던 러시아혁명을 한국 사회에 적용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문제 인식으로 고민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필자가 20대 초반일 때 한국 사회는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정권이 철권통치를 하고 있었고, 그 군사독재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이 최고조에 달해있을 때였다. 군사정권의 벽은 너무나 견고해 보였고, 시민과 노동자에 대한 탄압은 너무나 가혹했다. 반대급부로 군사 쿠데타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들의 열망 또한 뜨거웠고 끝이 안 보이는 지난한 투쟁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과정에 한국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사회혁명에 관심을 갖는 활동가가 등장했다. 자연스럽게 이론적으로는 마르크시즘 실천적으로는 레닌주의에 관심을 갖는 운동가 집단이 생겨났고, 필자 또한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빠져있던 시절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순진무구하고 철부지 같은 생각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한국의 정치적 상황이 너무나 엄혹했기에 사회주의 운동에 주목한 이가 적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현실의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한 이상 사회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지 않았을까 싶다. 윤 대통령 탄핵 인용 이후 뜬금없이 레닌이 소환이 된 이유가 무엇인지 개인적으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비록 시대적 상황과 배경은 다르지만 레닌의 문제 인식, 즉 혼란한 시기에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또한 무엇으로부터 시작할 것인가라는 그의 문제 제기 자체가 탄핵 이후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의 한국 사회가 러시아와 같은 혁명적 상황은 물론 아니다. 당연히 레닌이 주장한 대중의 정치적 행동을 조직화하고 혁명을 수행하기 위해 전국적 선전 활동과 전위 조직이 필요하다는 입장에 동의하는 것도 전혀 아니다. 다만, 극도로 혼란한 이 시기에 현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그 대안을 찾기 위해 우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실천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과정에서 필자의 머리를 강하게 내려치는듯한 강한 충격을 받은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지난 1월 19일 발생한 서울서부지방법원 점거 폭동 사태이다. 탄핵심판 과정에 불만을 품은 일부 극우 유튜버와 윤 대통령 열혈 지지자가 법원의 담장을 넘어 내부에 침입한 후 유리창과 기물을 부수고 방송사 기자와 경찰에게까지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였다. 일부 과격분자는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내뱉으며 폭력을 선동하였고, 심지어 특정 판사 이름을 거론하며 처단해야 한다는 말을 마치 영화 속 폭력배 행동대장처럼 소리치며 이미 아수라장이 된 법원을 활보하며 다녔다. 그 끔찍한 장면이 방송과 유튜브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처럼 전파되었고 대다수 국민은 충격에 빠졌다. 이번 서울서부지방법원 점거 폭동 사건으로 141명이 체포됐고, 이 중 92명이 구속되었으며 나머지 인원들은 후속 조사 및 처리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아직 그 사건의 전모가 전부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일부 개신도 세력, 극우 유튜버, 극우 성향의 지지자들이 법원 폭동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한민국 헌정 이래 법원 습격은 처음 있는 사건이었다. 법원은 대한민국 헌정 질서의 최후 보루였고, 법원 앞 1인 피켓 시위나 성명 낭독 등 평화 시위는 있었지만 법원 자체를 공격 대상으로 정하고 법원과 경찰, 그리고 기자와 민간인에게까지 가한 물리적 폭력 행사는 우리나라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라졌던 극우 파시즘이 2025년 대한민국에 등장한 것인가라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한국 사회에 극우 파시즘이 등장하고 그 세력의 조직화와 대중화가 이뤄졌다는 전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거는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현시점에서 국가 발전과 사회 통합을 위해 극우 파시즘 세력의 준동만은 반드시 막아야 할 것이다.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 우리는 무엇부터부터 시작할 것인가. 먼저 초유의 국가비상사태를 야기한 내란 주모자와 주요 종사자에 대한 법적 심판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하고 헌법을 유리한 극우 파시즘 세력의 시대착오적인 망상과 부도덕함에 대한 결연한 절연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대선이 곧 시작된다. 대선 과정에서 시민이 주도적으로 나서 포용과 관용의 정신으로 정치적 다원화를 인정하는 사회적 공감대를 이뤄내고, 이를 통해 이념, 세대, 종교. 지역 갈등을 완화할 수 있는 사회 통합의 길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시 한번 시민 덕분에 대한민국호는 위기의 파고를 넘어 따듯한 봄의 나라로 나아가리라는 점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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