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공직 선배님은 노인대학장입니다. 학장님은 시골마을에 시집온 아주머니뻘의 70살 며느리가 총무를 보고 있는 고향마을 노인대학에서 삶에 대한 강연을 3년째 이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올해 고향마을 노인대학에서 소개된 화두를 몇 가지 소개하겠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소고기 반근과 우지 2근 반'입니다. 1년에 10번 가까운 제삿날이면 어머니는 막내아들에게 소고기 반근을 사 오라는 심부름을 보냈습니다. 어적, 육적, 봉적을 올리는 제사상에 닭 한 마리, 소금에 절인 조기 한 마리, 그리고 얇게 저민 소고기 반근이 필요한 것입니다. 제사 전날에 어김없이 면 소재지의 정육점을 다녀와야 했습니다.
아마도 첫 번째 도전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읍내까지 4km를 걸어와서 정육점에 들러 고기 반근을 청했습니다. 유난히 눈이 큰 사장님은 '고기는 냉장고에 있습니다'라는 아크릴 간판이 들어있는 진열장에서 칼과 창을 꺼내어 휙휙 칼날을 세운 후 고기 한 점을 베어 신문지에 포장합니다. 그리고 다른 냉장고를 열고는 흰 고깃덩어리를 듬뿍 잘라서 다른 신문지에 포장합니다. 고기 반근을 사 오라는 심부름으로 왔는데 주문서에 없는 소기름을 듬뿍 주십니다. 그래서 고기만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심부름을 다녀온 아들을 기다리신 어머니는 손에 든 고기는 나중이고 소기름 덩어리가 보이지 않으니 당황하십니다. ‘소기름은 어찌했는가’ 물으십니다. 받지 않았다 답하니 그것을 받아왔어야 한다 말씀하십니다. 황급히 달려가서 ‘소기름을 달라’ 했습니다. 눈이 큰 정육점 사장님은 '네가 다시 올 줄 알았다'라는 표정으로 두말없이 소기름덩이를 주십니다. 한때 우지 라면 사건이 세상을 떠들썩 한 바가 있습니다만 1968년 당시로서는 소기름은 주방의 중심이었습니다. 어느 음식에나 소기름을 넣으면 맛있습니다. 특히 신김치를 냄비에 넣고 끓일 때 소기름 한 덩이를 넣으면 요즘 말하는 마법의 가루, 라면 스프를 따라갈 풍미를 내주는 조미료가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금도끼, 은도끼, 쇠도끼를 다 주었다는 산신령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어르신들도 다 아시는 바이니 현대판 산신령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50살 부부가 산신령께 정성을 다한 바 소원을 들어주시겠다 합니다. 아내는 얼른 부자가 되게 해달라 말했습니다. 산신령은 우물에 금덩이를 넣어주었습니다. 물을 긷다가 금덩이가 타래박을 타고 올라오니 부자가 되었습니다. 남편은 자신보다 30살 젊은 아내와 살고 싶다고 소원을 말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잠에서 깨어보니 남편은 어느새 80세가 되었습니다. 소원대로 50세 아내와는 30년 나이 차이가 났습니다. 산신령이 남편의 소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알면서 그리한 것인가는 각자의 판단으로 돌리겠습니다.
마무리 이야기는 물지게로 물을 나르는 할아버지와 깨진 물통 스토리입니다. 깨진 항아리 물통은 할아버지가 물을 길어올 때 ‘졸졸졸’ 물이 새어서 집에 도착하면 물이 반 통만 남게 되는 것이 늘 송구하고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에게 미안하다 말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면서 그동안 물지게를 지고 오간 길을 다시 가보자 했습니다. 가보니 길가에는 아름다운 꽃이 한가득입니다. 할아버지는 물이 새는 항아리 물통을 늘 오른쪽에 걸고 물을 날랐습니다. 새는 물은 길가의 꽃 묘종에 뿌려졌습니다.
그냥 지나가는 일인 듯 보여도 다 의미가 있고 역할이 있음을 알게 하는 교훈적인 이야기입니다. 할아버지는 깨진 항아리에게 말했습니다. 세상의 그 무엇이라도 존재의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이다. 깨진 항아리가 있어서 길가에는 아름다운 꽃이 피고 많은 사람들이 꽃을 보고 즐거워한다는 점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고향마을 어르신을 만나서 더 낮은 자세로 종종걸음으로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드릴 각오를 다지고 있습니다. 나 한 몸 망가져서 잠시라도 어르신들이 행복하시다면 이 또한 즐거운 일이고 효도를 다하는 일이라 여기고자 합니다. 어르신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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