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신 음악칼럼] 베토벤의 유서

김명신 | 기사입력 2024/04/18 [08:07]

[김명신 음악칼럼] 베토벤의 유서

김명신 | 입력 : 2024/04/18 [08:07]

▲ 김명신 한세대 주임교수, 협성대 객원교수     ©수원화성신문

 

4월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이하여 평생 청각장애 및 각종 질병의 고통 속에서도 위대한 음악으로 삶을 승화시킨 베토벤(L. v. Beethoven, 1770-1827 독/오)을 소개하고자 한다.

 

음악의 성인(聖人)으로 불리는 악성(樂聖) 베토벤은 27세 때 시작된 난청으로 인해 47세에 청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그는 신체적인 고난을 극복하고 위대한 음악 유산을 남겼지만 1802년 형제들에게 보낸 편지(하일리겐슈타트 유서-사후에 발견)에서 건강 문제, 특히 난청의 원인이 사후에 규명되길 원한다고 밝힌 바 있다.

 

베토벤이 사망한 당시에 부검을 통해 생전 간경변증(간경화)과 췌장염, 비장염 등을 앓았던 것으로 확인되었지만, 최근에 영국과 독일 등 국제 연구팀이 머리카락에서 채취한 DNA 분석을 통해 베토벤의 사망 원인을 확실히 규명했다. 연구 결과 베토벤은 간 질환에 걸리기 쉬운 유전인자를 보유했으며 19세기 당시 유행했던 B형 간염에 감염되어 결국 간경화로 숨진 것으로 추정하였다. 즉, 바이러스 감염, 잦은 음주 습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유전자 분석에서는 정상인의 100배가 넘는 납이 검출되면서 베토벤이 납 중독으로 사망했다는 가설이 있었지만, 이번 모발 분석 과정에서 기존 납 중독설 근거가 된 '힐러 가닥'(Hiller Lock)은 베토벤이 아닌 다른 여성의 머리카락이었던 것으로 판명됐다고 한다.

 

또한 2023년 최근에 새롭게 드러난 사실은 연구팀이 베토벤과 친척의 유전 정보를 서로 대조하는 과정에서는 베토벤 가계 족보와 DNA상의 생물학적 계보가 일치하지 않다고 밝혀냈다. 연구팀의 베그 교수는 "베토벤 자신이 사생아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1802년 베토벤은 극도로 악화된 건강으로 빈 교외 마을인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요양 중에 자살을 염두에 두고 유서를 작성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25년을 더 살았고, 그 기간 동안 베토벤은 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했다. 그런데 베토벤의 괴팍하고 무례하기 짝이 없는 품성에 대해 주위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것에 베토벤은 이러한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이하 중략~

죽음이 언제 오든 나는 기꺼이 맞을 것이다. 내가 갖고 있는 예술적 재능을 계발할 수 있는 동안은 설령 내 운명이 아무리 가혹할지라도 죽고 싶지 않다. (내 재능이 충분히 꽃필 때까지) 삶을 지속하고 싶다. 허나 (죽음이 예상 밖으로 일찍 찾아오더라도) 기꺼이 죽으리라. 그러면 끝이 없는 고뇌에서 해방될 수 있을 테니까.

죽음이여, 언제든 오라. 나는 당당히 네 앞으로 가 너를 맞으리라. 잘 있거라. 죽은 다음에도 잊지 말아다오. 그럴 만한 자격은 있다고 생각한다.

너희들의 행복을 염원하면서···.

 

자, 그러면 부디 행복해 다오.

 

하일리겐슈타트, 1802년 10월 6일

루드비히 반 베토벤

 

이것으로 너희들과 이별이다. 이를 데 없이 슬프다. 지금까지 품고 있던 한 가닥의 희망, 어느 정도는 회복하리라는 희망도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가을 잎이 나무에서 떨어져 시들듯 모든 희망은 퇴색해 간다. 이승에 태어났을 때와 마찬가지 모습으로 이제는 떠난다. 시원한 여름날··· 나에게 샘솟던 용기도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오오 신이여, 단 하루라도 나에게 순수한 환희를 맛보게 해주오···. 참다운 환희가 내 가슴 깊이 울리던 때 그 얼마나 오래인가. 오오, 언제 또다시 자연과 인간의 전당에서 그 순수한 기쁨을 맛볼 수 있단 말인가? 결코 그럴 수는 없단 말인가? 오오... 그것은 너무나 잔혹하다.

 

하일리겐슈타트, 1802년 10월 10일

루드비히 반 베토벤

 

“신이여, 당신은 내 마음이 인류에 대한 사랑과 선을 행하려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아실 것이오. 오오, 사람들이여, 그대들이 언젠가 이 글을 읽는다면 그대들이 나를 얼마나 부당하게 대해 왔는지 생각해 보라. 그리고 불행한 사람들은 당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한 인간이, 온갖 장애를 무릅쓰고 자기 역량을 다해 마침내 예술가 또는 빛나는 인간의 대열로 솟아오름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위로하라.”

 

이와 같이 베토벤은 유서를 썼던 32세에 육체적인 괴로움을 호소하였으나, 인류애를 음악이란 예술로 승화시킨 ‘위대한 음악가’였다 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베토벤은 죽기 직전 자신이 겪었던 수많은 질병과 고통의 원인을 죽은 후 부검을 통해 밝혀줄 것을 원했다. 왜일까? 이것이 바로 우리가 베토벤이 남긴 유서, 바로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를 살펴보는 이유이다.

 

배리어 프리(barrier free)는 고령자나 장애인들도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물리적·제도적 장벽을 허물자는 운동으로 1974년 국제연합 장애인 생활환경전문가 회의에서 '장벽 없는 건축 설계(barrier free design)'에 관한 보고서가 나오면서 건축학 분야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일본·스웨덴·미국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휠체어를 탄 고령자나 장애인들도 비장애인과 다름없이 편하게 살 수 있게 하자는 뜻에서 주택이나 공공시설을 지을 때 문턱을 없애자는 운동을 전개하면서 세계 곳곳으로 확산되었다.(네이버 지식 발췌)

 

최근 우리나라 문화 예술에도 배리어 프리 공연이 확산되고 있는데, 장애인을 포함한 남녀노소 모두 공연장에서 공연을 쉽고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적절한 환경을 조성한 공연으로 더욱 활성화되길 바란다.

 

또한, 물질만능주의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육체가 건강함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으로 병이 들어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물론 오늘날 정신질환의 원인 가운데 대부분은 정신적 문제가 아니라 육체적 원인으로 치료에 임해야겠지만 말이다. 또한 장애인들이 베토벤처럼 장애를 극복하고 자신의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여 잘살아 가는 사회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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